공립 교사로 일하시는 어머니 덕에 종종 학교 이야기를 듣는다. 그중에는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단다.’는 식의 가벼이 넘어가는 이야기 말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다. 학교에서 봄을 맞아 체험학습을 가던 날이었다고 한다. 하나같이 멋을 낸 채 상기된 얼굴을 한 학생들 사이에서 네 학생이 교복을 입고 나타났다. 의아한 일이었다. 그 나이 학생에겐 소풍날 사복을 입고 꾸미고 싶은 게 당연지사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나중에 아이들에게 연유를 물어보셨다. 사정은 이랬다. 네 명 중 한 아이가 집안 사정이 어려워 소풍날 입을 사복이 없었다. 소풍이 부담스러웠다. 사연을 들은 친구들은 다 같이 교복을 입고 가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그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 선한 마음에 절로 감동할 만한 이야기다.
최근 뉴스에선 저소득층 여학생의 ‘생리대’ 문제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일주일간 결석한 채 누워있었다는 이야기, 집에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해 보건실에서 생리대를 받아썼다는 경험담, 신발 깔창으로 생리대를 대체했다는 편부 가정 친구의 사연이 그것이다. 시발점이 되었던 생리대 가격 인상을 비판하는 트위터 글은 5,000번 이상 리트윗되었고, 이 파장 속에 유한킴벌리는 중저가 생리대 출시와 무상지원을 약속했다. 서울시와 전북교육청 등의 공공기관이 저소득층 여학생을 대상으로 생리대 지원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일반인의 모금 사업과 연예인 · 민간단체의 기부 소식도 들려온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가장 기초적인 위생관리도 제대로 할 수 없던 여학생들. 그 아이들에게 사회적 공감과 위로가 쏟아진 셈이다.
그러나 저소득층 학생들이 경험하는 경제적 어려움은 이뿐이 아니다. 5월 7일 통계청의 ‘2016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2015년 초 · 중 · 고등학교 학생들의 사교육비는 월평균 24만 4,000원으로 2010년 이후 최고치다. 가구소득별로 데이터를 분류하면, 월 소득 100만 원 미만의 가구 학생들의 월평균 1인당 사교육비는 6만 6,000원, 200~300만 원 미만 가구는 15만 9,000원, 400~500만 원 미만은 26만 6,000원, 600~700만 원 미만의 경우 36만 1,000원이다. 월 소득 700만 원 이상의 가구가 월평균 42만 원을 찍으며 그 흐름을 자연스레 잇는다. 아마 그 교육비가 목표로 했을 ‘학벌’은 학생들의 인생 전체를 좌우할 것이다. 사교육을 받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무상 프로그램에만 의존해야 한다.
교복값은 어떠한가. 2013년 교육부 자료를 보면 동복을 기준으로 한 전국 평균 교복 가격(중 · 고교 기준)은 25만 843원이다. 이는 개별구매 가격으로 학교 공동구매를 하는 경우 19만 9,689원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공동구매로 사는 교복은 보통 아이비클럽 · 스마트 · 스쿨룩스 등의 브랜드 교복을 제외한 중소 업체의 교복이다. 중학교 시절 내 경험을 돌이켜보면, 학생들은 브랜드 교복에 대한 선호가 강하다. 체육 시간마다 친구들이 교복을 책상에 걸쳐 둘 때 학생들은 누가 비 브랜드 교복을 입는지 곁눈질하곤 했다. 짓궂은 남학생들은 각자 이를 확인하기 위해 친구의 옷을 벗기기도 했다. 학생들이 고급 아웃도어 브랜드 옷으로 서로의 계급을 나눈다는 몇 년 전 이슈가 떠오른다.
그들이 겪는 아픔은 비단 생리대를 못사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공식적인 지표만이 아니더라도 학교 내외에서 쌓여가는 사연은 숱하게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번 생리대 사건에만 유독 주목했을까. 왜 이 사건을 두고서만 기업을 질타하고 공공 기관과 정부를 욕했나. 왜?
아마도 그건, 저소득층 학생들의 문제를 넘어 ‘생리대’란 단어가 떠올리게 하는 것들 때문일 것이다. 어느 언론은 생리대 기금 마련을 위해 기타를 들었다는 의사 밴드를 두고 ‘소녀여 걱정 마오.’라는 제목을 붙였다. 생리라는 단어에 대한 사회 특유의 머쓱함, 부끄러움, 일말의 보호본능은 우리 모두를 무장해제 시키기 쉽다. 생리를 경험하지 못하는 남자는 더욱이 그렇다. 그 때문에 이번 사태에선 저소득층 가정 학생 문제에 ‘여자’를 위한 기사도 정신이 잘 섞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기초적인 위생도 지킬 수 없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충격은 우리의 동정심을 자극한다. 그러니 남녀노소를 떠나 사람들은 정의감을 발휘했다. 그것이 여자를 위한 보호본능이었는지, 상상하기 힘든 위생 상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저소득층 학생 문제에 공분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어머니가 전해준 이야기를 다시 떠올린다. 괜찮은 옷을 사기 힘들었던 아이를 위해 교복을 함께 입어준 친구들은 인생에서 쉬이 만나기 힘든 존재다. 그 학생은 운이 좋았다. 그러나 그때 운이 없던 학생도 있었다. 생리대를 살 수 없어 집에 누워 있었던 어떤 학생들 말이다. 그들은 이제야 생리대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눈에, 혹은 친구 눈에 띄지 못한 운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사람의 마음을 울리기에 적절한 이야기가 없다는 이유로 결핍과 도태를 고스란히 경험해야 하나? 미안하지만, 우리 사회의 꾸준한 관심이 없다면, 우리가 계속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답은 ‘그렇다’이다.
걷고 있는 우리 아이들. 사진/엠빅 뉴스 캡쳐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