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겉 핥기. 사물의 속 내용은 모르고 겉만 건드리는 행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 불거진 부산 남성 경찰관·여고생 성관계 사건을 두고 언론이 수박의 겉을 핥는 모양새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후부터 꾸준히 해당 경찰관의 ‘외모’와 ‘나이’에 집중하는 기사가 나온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당 사건을 두고 "여학교에 잘생긴 남자 경찰관을 배치하면서 예견된 문제"라고 주장하며 수박 겉 핥기 싸움에서 질 수 없다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해당 사건은 언론에 알려진 대로, 장신중 전 총경이 지난달 2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부산 사하경찰서 소속 김모(33) 경장과 연제경찰서 소속 정모(31) 경장이 학교전담경찰관(이하 SPO)으로 활동하며 여고생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었다는 내용이다. 사건은 현재 특별조사단을 통해 성관계에 강압성이나 대가성 등 위법 행위의 여부와 보고 및 조치상의 문제점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성관계의 위법성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윤리적 문제와 보고체계의 책임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건을 두고 언론을 비롯한 일부에서는 SPO의 외모가 대체로 준수한 것과 연령층이 낮은 것을 문제 삼는다. 심지어는 여학교에 남성 경찰관이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부산경찰청도 이러한 여론을 의식해, 앞으로 여학교에는 여성 경찰을, 남학교에는 남성 경찰을 배치할 계획을 밝혔다.
경찰관의 외모와 연령에 집중하는 보도들. 사진/포털사이트 네이버 화면 캡쳐
이번 사건의 근본적 원인은 경찰을 홍보에 이용하면서, 상담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찰관이 학생의 상담을 도맡게 된 상황이다. 부산지역 SPO 50명 중 상담 자격증 등을 소지한 청소년 전문 인력은 4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경찰과 학생의 사적 만남을 관리할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40대 남성 SPO가 알고 지내던 학생의 소개로 여고생을 사적으로 만나 승용차 안에서 성폭행 하는 사건이 있었다. 사적 만남의 위험성을 사전에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음에도 어떠한 조치도 없었던 것이다. 사적 만남이 상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면 상담 활동에 대해 학교에 보고하거나, 상담 내용의 기록 등이 수반됐어야 한다.
경찰관의 외모와 연령에 집중해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것은 왜곡된 해석이다. 이러한 관점은 성(性)적 문제들이 표면적인 요소에 의해서만 발생한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학교에 배치된 경찰관이 준수하지 않은 외모의 중·장년층 남성이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란 것인가? 이 같은 주장은 이번 사건을 사적인 영역에 국한시키는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경찰관은 조건을 불문하고 경찰관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더욱이 SPO라는 직책에 따르는 책임은 표면적 요소와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경찰의 노령화를 문제 삼으면서 경찰의 활동에 연령제한을 두는 것은 얼마나 웃긴 일인가.
마지막으로, 부산 경찰청이 재발방지 대책으로 내놓은 성별에 따른 SPO배치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부산 경찰청은 이를 위해 여성 경찰 인력을 확충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현재 부산경찰청 소속 SPO 50명중 남성과 여성은 각각 34명과 16명으로 남성의 수가 여성에 비해 두 배 이상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순히 전체 SPO중 여성 경찰의 비율을 늘리기 위한 인원 확충이 과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문성 결여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 것인가. 경찰이 상담사로서의 역할을 끝까지 포기 못하겠다면 성별을 떠나 상담 전문 인력의 확보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영역을 나누는 것도 근시안적인 발상이다. 물론 남성 경찰관을 여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문제는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문제해결 방법은 이번 사건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없다. 사건의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여론은 뜨겁지만 사건의 진행과정과 문제점들을 신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건에 대한 면밀한 검토도 없이 내놓은 것을 두고 과연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난해 7월 경기도내 여자고등학교 남교사가 자신의 집에 놀러온 제자와 성관계를 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번 사건과 비교했을 때, 경찰관과 교사라는 직업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유사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부산 경찰청과 같은 방식의 대응이 이루어진다면 머지않아 여학교에 남자 교사는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번 사건은 권력적, 제도적, 윤리적 측면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사건을 단순화하는 것은 성추문을 사적 영역의 문제로 호도해버릴 위험성을 가진다. 또한 근시안적 문제해결에 급급한 수뇌부들의 모습은 사건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경찰청은 미봉책은 집어치우고 진정으로 잘못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길 바란다. 더불어 언론도 수박 겉 핥기를 부추기는 행동은 그만두고, 사람들이 수박의 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