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기자] 국가 대표가 되면 주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말이 비유적으로 많이 쓰인다. 운동 선수들도 '태극마크를 다는 게 꿈이다'는 말을 종종 쓴다. '태극마크'는 곧 국가 대표의 상징이다. 국기인 태극기를 가슴에 달았다는 건 곧 나라를 대표하는 이가 됐다는 걸 의미한다.
지난 6일 개막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하는 대다수의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도 어김없이 태극기를 달고 경기장을 누빈다. 커다란 태극 문양의 마크를 유니폼에 새긴 선수들은 경기 마지막 순간, 태극기를 시상대 맨 꼭대기에 올리겠다는 일념으로 구슬땀을 흘릴 예정이다. 태극마크는 국가 대표를 꿈꾸는 한국 운동 선수들에게 절대적인 동기부여를 하곤 한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크게 발달한 축구로 범위를 좁히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축구는 지난 2002 한일 월드컵부터 국기 대신 각국 협회 엠블럼을 택하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태극마크 대신 대한축구협회 상징인 호랑이 마크를 새기도록 한 바 있다. 태극기는 선수 오른쪽 소매 끝으로 조그맣게 이동했다. 축구에서만큼은 최근 약 10년 동안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다'는 말은 맞아 떨어지지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이번 리우 올림픽에 나선 남자 축구 대표팀 유니폼엔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어찌 된 영문일까.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올림픽이라고 선수들의 애국심 고취를 위해 잠깐 태극마크를 다시 가져온 걸까. 그건 아니다. 이유는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축구에 출전하는 국가에 각국 축구협회의 상징인 엠블럼 대신 올림픽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국기를 달라고 강제했다.
하지만 호랑이 유니폼만 가지고 베이징에 입성한 한국 대표팀은 1차전 카메룬전은 무사히 넘어갔지만, 그 다음 이탈리아전 때 파란색 바탕의 호랑이 마크를 같은 색 매직으로 모두 지우고 경기에 나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었다. 미처 국기 유니폼을 준비하지 못한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2012 런던 올림픽 때부터 대표팀은 태극마크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기 시작했고 이번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IOC의 조치는 국제 최고 스포츠로 우뚝 선 축구 대표기관 국제축구연맹(FIFA)을 견제하려는 생각이 담겼다. 축구는 스포츠의 하위 개념이지만 이미 월드컵이란 세계 최고 스포츠 이벤트를 지닌 FIFA는 인기와 수익면에서 IOC의 테두리를 벗어났다. 축구협회보다 올림픽위원회의 권위를 앞세우는 IOC의 엠블럼 제한은 상급 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의도다. 이렇듯 유니폼의 태극마크 하나에도 만만치 않은 힘 겨루기가 숨겨져 있는 게 바로 스포츠의 세계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