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대선주자는 격에 맞는 비전 제시해야

입력 : 2016-08-09 오전 6:00:00
지난 총선 결과로 한국정치에 봄이 오나 했지만 한여름 밤의 꿈일 뿐이었다. 총선 이전과 이후 정치권은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전당대회 준비로 시끌벅적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양당 모두 계파 청산이라는 단골메뉴만 늘어놓고 있다. 언론은 연신 내년 대선 출마 가능성이 있는 인사들의 가상대결을 보도하고 있지만 누가 진짜 후보가 될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이 와중에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와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이상야릇한 대권행보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약간의 시간 차이로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벙거지 모자를 쓴 채 나타나 '정치 바캉스'를 즐기는 듯 했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움직임 하나하나가 대권을 향한 퍼포먼스로 가득하다.
 
문 전 대표는 "비우고 채워" 돌아오기 위해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다지만 무엇을 채우고 돌아왔는지는 알 길이 없다. 부탄을 방문하고 ‘국민행복론’을 설파했지만 어떻게 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보이지 않는다. 총선 뒤 당대표를 사퇴하고 참회 모드에 들어갔던 김 의원은 팽목항과 소록도를 방문하고 벌교의 한 시골 마을에서 고추를 따는 등 민생투어를 시작했다.
 
대선을 앞둔 두 정치인의 행보는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 물가상승과 청년실업, 사드 배치문제 등으로 국가는 심각한 위기에 내몰렸는데 구식 퍼포먼스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트레킹으로 심신을 단련하고 민생투어로 대중을 만나는 것이 백번 양보해 나름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폼 나는 바람잡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보다는 국가를 개혁할 구체적인 안을 만들어 국민 앞에 비전을 제시하는 21세기형 행보를 보여줘야 한다.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프랑스는 우리와 달리 대선주자들의 윤곽이 또렷하게 잡힌다. 공화당은 오는 11월 후보 경선투표 스케줄을 발표했으며 사회당의 경우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당연히 대선 후보가 되어야 하지만 그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며 당내 경선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높아 내년 1월 경선투표를 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5월16일에는 정계를 잠시 떠났던 사회당의 전 경제부 장관 아르노 몽부르가 복귀해 도전장을 내밀고 프랑스를 위한 비전을 발표했다. 몽부르 전 장관은 프랑스인들이 나라의 운명을 숙고해 보길 염원하면서 '대안 프로젝트'를 가까운 시일에 공동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는 “하나의 커다란 조직이 되어버린 정치시스템은 작동력이 떨어지고 지쳐있다”며 “정치 책임자들은 사회개혁을 원하지만 나는 먼저 사회가 정치 시스템과 책임자들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시민사회의 참여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이디어맨으로 통하는 몽부르 전 장관은 지난 2014년 8월 발스 총리의 프랑스 경제정책에 대립각을 세우며 충돌한 후 장관직을 사임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그는 사임 직후 리더십과 경제를 공부하기 위해 세계 유수의 인재들이 모이는 인시아드(INSEAD) 경영대학원에 시험을 쳐 입학했다. 지난해 2월16~26일에는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의 초청을 받아 프랑스 경제정책을 강의하는 한편 미국 경제정책을 접하며 영감을 얻었다. 프린스턴대 학생들과 프랑스 정부에서 쌓은 경험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몽부르 전 장관은 직접 작은 회사를 설립하고 경영하면서 프랑스 사회와 경제의 문제점을 손수 체험하고 진단한 경험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선을 앞두고 프랑스 정치시스템과 책임자들의 개혁을 위해 당원들과 국민들에게 대안 프로젝트를 만들자고 설파하며 기득권 타파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 정치인들은 정치적 시련기나 ‘정치 방학’ 기간을 트레킹이나 민생투어로 소진하며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받으려 할 뿐이다. 국가를 위한 새 비전은 나올 길이 없다. 정치인들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 피땀 흘려 공부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한국 정치인들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지친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바람잡이식 정치를 배제하고 국가 현안이 무엇인지 짚어 처방전을 내놔야 한다.
 
이미지 정치를 청산하고 알맹이가 꽉찬 프로젝트로 국민 앞에 나서야 할 때다. 대선주자들이 이 점을 인식하고 진정한 정치행보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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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