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경(가명,22)이가 복도에 있으면 복도 반대편까지 목소리가 들렸다. 은경이는 잇몸이 훤히 보이게 잘 웃었고 친구가 많았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엔 뒷자리에서 바람막이를 덮고 자주 엎드려 있었다. 교실보단 학교 밖을 더 좋아했다. 학교에 늦는 날도 있었고, 매주 한 번씩 방과 후 수업을 빠졌다. 은경이는 2년제 대학을 마치고 은행에 취직했다. 한 달에 150 정도를 받으며 저축도 좀 했다. 6개월 뒤 은경이는 사직서를 냈다. 직장이 힘들다고 했다. 가족들과 오랜만에 저녁을 먹다 은경이 얘기를 꺼냈다.
“걔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냐, 요새 취직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아무튼, 쫌만 힘들면 그만둬. 그래가지고 뭘 하겠어. 네가 진짜 걔 친구면 말렸어야지. 취직 못 하는 애들 못 봐서 그래. 한심해 진짜”
“언니 되게 꼰대같이 말한다.”
혹자는 엄살이라고, 노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나는 은경이가 유난히 배를 잡고 웃거나 목소리가 더 커지는 날이 불안했다. “너 무슨 일 있지!” 라고 물으면 은경이는 금세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고등학교 때 은경이는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녔다. 점심 먹고 운동장에서 산책하다 구석으로 가서 많이 울었고, 새벽에 전화기 너머에서 울었다. 병원 진료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방과 후 수업을 빠졌다. 친구들이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웃어넘겼다.
대학에 가서는 공부에 흥미를 붙여 자격증도 따고 꽤 열심히 취직 준비를 했다. 취직 후엔 “나 정신 차렸어!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진짜 4년제 갔을 텐데…. 이제 부모님 속도 안 썩여”라며 자신을 대견스러워했다. 6개월 뒤 은경이는 지칠 대로 지친 목소리로 “은근하게 왕따시켜….야유회 가서 나만 혼자 다녔다? 자기들 일도 나 시키고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아. 경쟁 때문에. 경력도 아직 못 쌓아서 불안한데….”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날도 은경이는 유난히 시끄럽다가 한껏 취한 목소리로 울었다.
하나의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숨어있다. 이를테면 은경이가 내뱉은 ‘힘들다’에는 약국에서 두통약을 찾던 무수한 날들과, 남의 업무 때문에 택배 상자를 들고 헤매던 꽁꽁 언 손과, 주변의 눈치와, 자조 어린 울음들이 녹아있다. 관심 없다. 가장 쉬운 단어 해석 방법은 내 경험을 일반화하여 평가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꼰대’들이 자주 쓰는 방법이다. 결과적으로 ‘힘들다’는 ‘끈기 없게 회사를 그만둔 요즘 애들’로 해석됐다. 공감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 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달과6펜스』中
“걔는 왜 그렇게 의지가 약해.”, “개발도상국에 가서 한 달만 지내봐라”, “헬조선이라니 정신상태가 썩은 거다.” 견고한 구리 탑 안에 갇힌 ‘꼰대’들이 말한다. 꼰대는 단순히 나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 은어가 아니다. 타인의 숨은 이유를 구태여 찾으려 하지 않고 공감이 자리 잡을 틈 없이 비난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다. 공감은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인데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 알 수 가 있나.
사진/YTN 방송 캡쳐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