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연상호 감독의 새 애니메이션 '서울역'의 출발은 실사영화 '부산행'과 비슷하다. 좀비가 출몰했고, 어리둥절하던 차에 사람들이 물려죽는다. 그리고 곧 좀비가 돼서 또 다른 사람들을 물어 죽인다. 좀비들은 총을 맞지 않는 한 쉽게 죽지 않는다. 첫 출몰 지역인 서울역 인근이 순식간에 좀비 세상이 된다.
'서울역' 포스터. 사진/NEW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통해 극단적인 우울함을 그려온 연상호 감독은 또 한 번 자신의 스타일로 무능한 공권력과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을 꼬집는다. '서울역'의 출발은 '부산행'과 비슷하지만 마무리는 지독히 어둡게 처리된다. "인간세상보다 나은 좀비세상"이라는 기획의도가 1시간 30분 내에 정확히 드러난다.
좀비 떼가 출몰했는데도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은 어떤 일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영문도 모르며, 일종의 폭동 떼라고 치부한다. 뒤늦게 위험한 일이 터졌다는 것을 알지만, 공권력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좀비 떼에게 물려죽는데 일조한다. 공권력의 수준이 현실보다도 더 극악하게 표현됐지만, 연 감독 특유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그려져 더욱 무섭다. 나라가 완전히 망가지는 상황에 놓였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후반부에 있는 반전은 역대 급이다. '헉'하는 반응이 튀어나올 정도로 충격적이다. 물 흐르듯이 전개되며 희망이 보이는 대목에서 갑작스럽게 터지는 반전은 보는 이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다. 가족도 돈도 없이 사회안전망 밖에 놓인 나약한 10대 혜선(심은경 분)을 보고 있으면 "저렇게 살 바엔 차라리 좀비한테 물려죽는 게 낫겠다"라는 심정이 든다. 영화는 좀비보다 인간이 더 무서울지도 모르는 존재라고 말한다.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라 충격은 배가 된다.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를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심은경과 이준, 류승룡은 자신의 목소리와는 조금 다른 톤을 갖고 연기에 임한다. 정보를 모르고 영화를 보면 더빙한 이가 누군지 쉽게 가늠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입모양을 맞추기보다는 인물들의 감정에 더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보니 만화임에도 웬만한 실사영화보다 더 실감난다. 심은경의 목소리로 듣는 욕은 신선하다. 입모양이 좀 안 맞기는 하나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다.
'부산행'의 프리퀄로 잘 알려져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좀비 발생의 원인은 '서울역'에 담기지 않는다. 비슷한 좀비가 나오지만 분위기부터 메시지, 스토리까지 전혀 다른 색깔의 작품이다. 기존의 '돼지의 왕', '사이비'를 좋아했던 관객은 연 감독이 돌아왔다고 기뻐할 것 같다. 오는 18일 개봉하며, 상영시간은 92분이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