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장애인 수가 매년 줄고 있다. 의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덕분이다. 하지만 10여개의 장애 가운데 장애인 수가 증가하는 유형이 있다.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등이 포함된 발달장애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달장애인은 2005년(13만7399명)에 비해 1.5배(7만3456명)가량 늘어난 21만855명으로 집계됐다. 발달장애인 비중도 2005년 7.7%에서 지난해 8.5%로 증가했다. 이는 정부 공식 집계로, 전문가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숫자까지 포함하면 전체 발달장애인 수는 30만~4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도 나섰다. 지난해 말 ‘발달 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을 시행하며 대책 마련에 나선 것. 하지만 수요에 비해 전문기관과 이들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소셜벤처 '동구밭'은 이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션을 가지고 탄생했다. 발달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적은 정부와 같지만 수단은 달랐다. 이들은 발달장애인에게 치료와 지원이 아닌 친구를 제공한다. 비장애인 친구를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동구밭을 일구는 노순호 대표를 만나봤다.
[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농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20대 중반의 대학생이 인사를 건넸다. 동구밭 주인 노순호 대표다. 대학이 방학에 돌입해 또래 동기와 선후배들이 한창 즐길 때임에도 노 대표는 여전히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텃밭을 가꾸고, 발달장애인들과 시간을 보낸다. 농부도, 사회복지사도 아닌 노 대표는 왜 이 같은 일에 푹 빠졌을까.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일자리가 아닌 친구
2013년, 동구밭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대학 내 동아리에서 출발했다. 노 대표는 당시 마음이 맞는 친구 4명과 함께 도시농업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도시농업으로 해결하는 수 있는 사회문제를 고심하던 중 텃밭에서 우연찮게 발달장애인을 만났고, '발달장애인에게 농사를 가르쳐 도시농업인으로 육성시키자'는 미션을 스스로 부여했다. 발달장애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일자리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는 얘기도 주변에서 많이 들은 터였다. 2014년 도시농업 프로젝트는 서울 강동구에서 발달장애인 5명과 시작됐다. 동구밭의 시초다.
발달장애인과 텃밭을 가꾼 지 6개월이 지났다. 노 대표는 당시를 회상했다. "6개월간 텃밭을 함께 가꿨지만 그들은 농사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상추를 밟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농사를 하나의 직업으로 할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을 했다는 걸 알고 프로젝트를 접어야겠다고 결정을 했죠."
동구밭 프로젝트는 이렇게 사라지는 듯했다. 그때 한 발달장애인의 부모가 건넨 말이 노 대표의 생각을 바꿨다. "우리 아이는 대표님을 평생 기억할겁니다. 이 아이에게 대표님은 하나 뿐인 친구였으니까요." 이 부모는 자식이 일자리를 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프로그램에 참여시킨 것이 아니었다.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일자리가 아니라 친구였던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어요. 발달장애인을 위한 일이라고 하면서 정작 그들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던 거죠. 이들은 돈을 버는 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일자리가 없어서 취업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사회성이 없어서 오래 일하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또래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사회성을 개선되는 데 큰 힘이 된다는 걸 깨달았죠."
2015년 노 대표는 소셜벤처 동구밭을 설립하고, 발달장애인과 또래 비장애인을 1대 1로 매칭시키는 사회성 교육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마련하게 됐다.
노순호 대표(왼쪽에서 두번째)가 프로그램에 참가한 발달장애인, 비장애인과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동구밭
발달장애인의 놀이터 동구밭…수도권에 텃밭 22곳 마련
동구밭은 올해 창업 2년차에 접어든 새내기 기업이다. 짧은 기간에도 현재까지 동구밭을 거쳐간 발달장애인은 500여명에 달한다. 장애인 1명당 비장애인 친구 1명을 매칭시켜 주기 때문에 참여한 비장애인 수도 500여명이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도 발달장애인 200명, 비장애인 200명이 참가하고 있다. 텃밭도 늘고 있다. 서울 강동구의 한 텃밭에서 시작해 지금은 서울에만 18곳에 텃밭을 마련했다. 경기지역도 현재 4곳으로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매주 텃밭에서 만나 함께 농작물을 가꾸면서 친구가 된다. 텃밭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사회와 소통하는 경험을 통해 발달장애인들은 한층 더 성장해간다. 발달장애인의 재참가율은 90%에 육박한다. 그만큼 만족도가 높다는 의미다. "텃밭에 가기 전날에는 소풍을 앞둔 아이들처럼 준비물을 머리맡에 두고 잔다고 해요. 비가 오면 행여 텃밭에 못가게 될까봐 걱정을 한다고 합니다. 농부들은 계속되는 무더위에 비가 오면 좋아하지만, 이 친구들은 오히려 걱정을 하는 거죠. 이들에게 텃밭은 놀이터입니다."
발달장애인은 동구밭 프로젝트를 통해 어느 정도 변화됐을까. "우리가 시험을 보면 성적이 나오듯이 그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만 수치로 결과를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죠. 사실 변화는 비장애인에게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이 변화되는 것도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이지만, 주변의 환경이나 비장애인이 바뀌는 것도 저희가 추구하는 바입니다."
동구밭 프로젝트에 봉사자로 참여한 한 여대생의 사례다. 대학 졸업 후 직업 선택에 대해 늘 고민이었다. 현재 체육을 전공하고 있지만 그가 원했던 분야는 아니었다. 고민을 이어가던 중 프로젝트에 참가해 발달장애인 친구를 만났고, 그 장애인 친구가 변화되는 모습을 경험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성취감으로 그는 '특수교육 교사'라는 꿈을 찾게 됐다. 동구밭을 통해 발달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들도 변화되고, 성장하고 있었다.
동구밭은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의 1대1 매칭을 통해 사회성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사진/동구밭
천연비누로 수익창출…장애인 일자리 창출 기대
동구밭도 기업이다. 때문에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모든 프로젝트는 유료로 이뤄지지만, 프로젝트 참가비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발달장애인의 경제사정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교육비를 높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노 대표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창구로 비누 사업을 택했다. 발달장애인이 가꾼 텃밭에서 재배한 농작물을 수확해 4주간 저온에서 숙성시켜 만든 천연비누다. '직접 텃밭에 오지 않아도 발달장애인에게 친구를 선물할 수 있다'는 가치도 담았다.
비누 사업은 지난 6월에 시작해 아직 초기단계지만,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텃밭을 가꾸다. 관계를 가꾸다. 얼굴을 가꾸다'라는 의미를 담아 '가꿈'이라는 비누를 론칭했습니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서울 지역 내 편집숍(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에 입점시켜 오프라인에서도 판매하고 있어요. 품질도 자신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비누를 판매한 지 두 달이 안 됐는데 재구매율도 높고 제품에 대한 평가도 좋아서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그는 비누사업으로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월 2000개의 비누 판매가 이어져 발달장애인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헤어질 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는 대학생이 아닌 열정과 온정을 겸비한 젊은 기업가의 모습이었다.
동구밭이 생산하는 천연비누 '가꿈'. 사진/동구밭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