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훈 사회부 기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자존심을 회복할 것인가. '권력의 시녀'란 불명예를 안고 갈 것인가. 검찰이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 현직 청와대 민정수석을 수사해야 하는 검찰의 현재 상황이다. 검찰은 비리의 당사자인 민정수석뿐만 아니라 그를 수사 의뢰한 특별감찰관을 동시에 수사해야 한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지난 18일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특별감찰 결과를 대검찰청에 보내고, 직권남용과 횡령 혐의 등으로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이 감찰관이 감찰 내용을 한 언론에 유출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분위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됐다.
우선 특별감찰관을 향한 보수단체의 공격이 시작됐다. 우 수석에 대한 수사 의뢰 직후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은 특별감찰관법 위반 혐의로 이 감찰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교계 내에서도 정의구현사제단 척결을 위해 활동하고, 사드 도입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등 극우 성향을 보이는 단체다.
청와대 역시 감찰 내용 유출에 대해 "국기를 흔드는 일"이라며, 오히려 수사를 의뢰한 특별감찰관에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이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대신 내민 특별감찰관제란 대안을 스스로 부정하고, 검찰에 노골적인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더구나 청와대는 우 수석에 대한 의혹 보도를 "식물 정부를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발끈하면서 과연 우 수석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국기(國紀) 문란'이 아닌 '박기(朴紀) 문란'이란 표현을 들어가며 청와대를 비아냥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대하는 검찰에 저마다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한다. 검찰은 사건을 배당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서울중앙지검의 고위직 일부가 이른바 '우병우 사단'에 포함돼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겠냐는 의구심이 만연하자 특별수사팀을 구성했지만, 여전히 온갖 사퇴 요구에도 꿋꿋이 버티면서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해야 한다.
각종 혐의로 홍만표, 진경준 등 전·현직 검사장을 기소하면서 썩은 속살을 드러내는 굴욕을 맛본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본질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를 바란다. 앞서 이와 비슷한 '국기 문란'으로 재판에 넘겨져 무죄를 선고받은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사건의 본질은 우병우 수석의 비위 여부"라고 말했다.
정해훈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