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우 다산네트웍스 대표와의 인터뷰를 위해 지난 22일 판교 테크노밸리에 위치한 다산타워를 찾았다. 1993년 다산기연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다산네트웍스는 유·무선 초고속 인터넷을 위한 각종 통신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해당 분야에서 최고수준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벤처 1세대 기업이다. 홍보팀 직원의 안내를 받아 대표실로 들어섰다. 벽에는 IT기업 대표의 방이라면 의례히 걸려 있을 만한 빽빽한 특허증서 대신 포효하는 호랑이 그림과 ‘중용(中庸)’이라는 한자 표구가 있었다. 또 탁자에는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의 홍보용 모델이 아닌 공군으로부터 받은 전투기 모형이 놓여있었다. 책장에는 IT관련 서적들과 함께 ‘다시 읽는 우리역사’, ‘비잔티움 연대기’와 같은 인문학 서적들이 빼곡히 자리했다. 역대 대통령 주재 청와대 행사에서 노타이 차림을 고수한 것으로 유명한 남 대표다운 방이었다. 남 대표와의 인터뷰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1시간가량 진행됐다. 남 대표는 인터뷰 중간중간 썰렁한 ‘아재개그’를 구사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풀어냈다. '도전은 일상이고 실패는 스승'이라는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남민우 대표는 1962년 전북 익산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공부를 싫어했던 악동이었지만 서울로 전학을 간 친구에게 자극 받아 공부를 시작했고, 1980년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한다. 1983년말 대체복무를 겸해 대우자동차에 입사해 엔진 시험장비 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대표가 22일 분당 다산타워 대표실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다산네트웍스
6년간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결혼도 했지만 그는 대기업이 개인의 꿈을 펼칠 수 있거나 인생 역전이 가능한 무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 대표는 “사내 정치에서 밀린 선배가 물러나고 그 주변인들도 함께 밀려나는 것을 보고 회사생활에 많은 회의감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외산장비의 국산화’라는 꿈을 안고 중소기업으로 이직했다.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장비개발 대신 영업활동 등을 하면서 2년을 보냈다. 다행히도 그 치열했던 2년은 허송세월이 아니었다. 대기업 6년보다 그를 더 성장시켰고, 창업의 계기도 됐다. 남 대표는 “처음부터 창업을 꿈꾼 것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며 “나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나스닥 상장사 존테크놀로지 인수…국내 벤처업계 최초
1991년 전 재산이었던 전세금 3000만원을 털어 소프트웨어 수입업체 ‘코리아레디시스템’을 설립했다. 이후 남 대표의 경영사는 ‘4전5기’라는 말로 압축된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부도 직전까지 몰려 미국으로 나가 직원들과 함께 용역을 하면서 빚을 갚았다. 2001년 벤처거품 붕괴로 벤처기업들이 하나둘 파산하자 2004년 경영권을 포기하고 해외기업에 인수합병됐다. 어렵게 경영권을 되찾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최근의 글로벌 불황 등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남 대표는 적극적인 연구개발과 인수합병 등으로 돌파구를 찾아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처음 위기를 맞이할 때는 많이 힘들었지만, 그런 위기를 몇 번 겪다보니 어떻게 하면 이겨낼 수 있는지 보이는 것 같다”며 “아직은 사업을 하는 것이 재밌고, 도전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다산네트웍스의 지난해 매출액은 2682억원이지만 영업이익은 4억원에 불과하다. 신규 확장한 계열사들 일부가 아직 본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소프트웨어 개발기업 핸디소프트, 자동차부품 생산기업 디엠씨, 전자파 차폐소재 개발기업 솔루에타, 플랜트용 열교환기 기업 디티에스 등 어엿한 그룹 진용이다. 다산네트웍스는 본업인 네트워크 사업과 자회사들의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해 사물인터넷(IoT)과 융·복합 산업 등 장기적인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남 대표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본격적인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이다. 다산네트웍스는 지난 4월 미국 나스닥 상장사 존테크놀로지 인수를 발표했다. 국내 코스닥 기업으로서는 최초다. 남 대표는 “존테크놀로지 주주총회가 현지기준 다음달 8일 예정돼 있다"며 "총회 승인 이후 절차가 완료되면 최대주주가 돼 나스닥 우회상장 효과를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미국, 중국, 일본, 베트남, 대만, 인도, 프랑스 등 해외 판매법인과 R&D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인도와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신 인프라 구축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남 대표는 “해외사업에 박차를 가해 업계 글로벌 TOP 5로 성장하고, 3년 내 매출 1조원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다산네트웍스 본사의 한 회의실에 걸린 글귀다. 사진/뉴스토마토
“실패 두려워말고 도전하라”
남 대표는 사회활동에도 열심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장관급인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선임됐다. 한국벤처기업협회(KOVA) 회장, 한민족글로벌 벤처네트워크(INKE) 의장,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 등이 그가 역임했거나 현재 맡고 있는 직함이다. 그는 “꼭 필요한 활동 위주로만 참여해 회사 경영에 큰 지장이 없다”며 “또 지주회사로 회사가 개편된 이후 각사 대표이사들이 책임경영을 하고 있다. 내가 꼭 개입해야 할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다양한 사회적 활동들은 하나의 목표로 귀결된다. ‘청년 창업의 활성화’다. 남 대표는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를 목표하고 있다”며 “그러나 그런 일자리는 많지 않다. 간신히 들어가도 60대 정도면 나와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신 창업을 권장했다. 남 대표는 “솔직히 창업해서 성공할 확률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면서도 “그러나 창업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경쟁력을 쌓으며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다”며 도전을 통해 쌓는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부와 사회를 향해서는 벤처문화 활성화 노력을 주문했다. 그는 “오히려 벤처거품이 없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며 “경제는 역동성이다. 설령 많은 벤처가 실패해도 1~2개가 대박이 나면 이전에 실패했던 벤처들의 손실을 모두 덮고도 남는다. 그것이 우리경제의 성장동력이 된다”고 주장했다.
남 대표는 후일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창업 대중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설 계획이다. 그는 “미국의 ‘뱁슨칼리지’나 ‘싱귤레러티’ 같은 창업에 특화된 교육기관을 만들어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라며 “벤처 1세대로서 더 많은 후배들이 도전하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선배 기업인이 되고자 한다. 그게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갚는 길”이라고 말했다.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대표가 지난 2013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시기, 2030정책참여단 발대식에 참석했다. 사진/다산네트웍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남 대표는 청년들을 향해 “두려움 없이 도전하라”고 거듭 충고했다. 그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을 믿고 용기 있게 도전하라”며 “젊을 때는 실패해도 충분히 만회가 가능하다. 젊을 때 다양한 경험을 쌓아서 자신이 평생 갈 수 있는 길을 찾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창업 기업인들을 향해서는 “창업의 길로 들어선다면 최소 10번은 생각이 바뀌어야 성공할 수 있다.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끊임없이 학습하고 변신해야 한다”면서 “끊임없이 시장의 소리를 듣고, 투자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업을 영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