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페어플레이로 파이를 키워라

입력 : 2016-08-29 오전 8:58:24
17세기 프랑스의 우화작가 라 퐁텐느는 인간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풍자했다. “바보들 가운데서도 사람만한 바보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료를 보는 눈이 육식 동물과 같고 자신을 보는 눈은 두더지와 같기 때문이다. 자신의 결점은 모두 용서하고 남의 결점은 하나도 용서하지 않는다. 조물주는 인간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동냥주머니를 차도록 같은 형태로 만들어냈다. 뒤의 주머니는 우리의 결점을 감추기 위한 것이고, 앞의 주머니는 남의 결점을 넣기 위한 것이다.”
 
21세기 한국에서도 라 퐁텐느의 동냥주머니를 찬 인간군상이 다수 존재한다. 지난 27일 개최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당 대표 후보로 출마한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과 이종걸·추미애 의원도 그들 중 하나였다. 전당대회 초반 신사적인 선거전을 반짝 펼치나 싶더니 중반 이후에는 여느 선거와 마찬가지로 상대의 결점을 들추는 네거티브 싸움에 몰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추 의원을 문재인 전 대표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호문’이라고 비아냥댔고 이 의원은 추 의원에 대해 이른바 ‘문심’의 낙점을 기다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추 의원도 김 위원장과 이 의원을 각각 “경험 없는 초보운전”, “분열·갈등하는 불안한 대표”라고 공격했다.
 
계파갈등으로 진흙탕이 된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타산지석 삼아 더민주는 당의 비전을 제시하고 대권 이슈를 쟁점화한 정책 대결을 해주기를 바랐지만 페어플레이는 온데 간데 없었고 이른바 ‘친문 대 비문’의 갈등으로 얼룩졌을 뿐이었다. 라 퐁텐느가 무덤에서 이 모습을 지켜봤다면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존재’라고 혀를 찼을 것이다. 당 대표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동냥주머니’를 차고 서로 싸워댔으니 말이다.
 
이달 중순 프랑스에는 라 퐁텐느를 무색케 하는 정치인이 등장해 훈훈한 미담을 남겼다. 그 주인공은 내년 프랑스 대선 유력주자인 공화당 소속 보르도시장 알랭 쥐페. 쥐페 시장은 동료 여성정치인 나탈리 코시위스코-모리제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11월20일과 27일에 벌어질 대선후보 경선을 위한 공화당 오픈프라이머리에 도전 의사를 밝히고 있는 모리제 전 환경·지속성장·교통 장관은 후보 등록을 위한 조건을 채우는데 어려움을 겪는 터였다. 후보 등록을 위해서는 오는 9월9일까지 20명의 국회의원과 230명의 지방의원, 2500명의 당원 추천 서명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모리제 전 장관은 서명을 3분의 2 밖에 받지 못한 상태다. 이 때 쥐페 시장이 부인 이자벨과 함께 며칠간에 걸쳐 지인과 동료들에게 모리제를 후원해 줄 것을 호소하는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모리제 전 장관은 공화당 경선에 여성 후보가 보이지 않자 자신이 대표로 참가해 선거전을 치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녀는 책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켰다>를 출간하고 자신의 대선 프로젝트와 21세기 프랑스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며 추천인을 모으고 있지만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러자 쥐페 시장이 “모리제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중이다. 그는 모리제를 돕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오픈 프라이머리에 여성 후보가 없다면 그것은 비통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모리제가 후보가 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누구보다 정보혁명을 잘 이해하고 있는 그녀의 자질과 품성 때문이다.”
 
이렇게 쥐페 시장은 오픈프라이머리에 여성 정치인이며 자질이 뛰어난 정보통신 전문가인 모리제 전 장관을 참여시켜 경선의 파이를 키우고 큰 그림을 그리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가 차기 대선 주자로서 프랑스인의 가장 큰 지지를 받는 이유는 이러한 당당함과 호탕함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자신의 단점은 숨기고 라이벌의 결점을 들춰 오히려 이미지를 구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 정치인들도 상호 비방에 나서기보다는 서로의 자질이나 특·장점을 인정하면서 정책 대결이나 비전을 바탕으로 선의의 경쟁에 나서야 한다. 정책과 비전 모두 제시하지 못한 채 서로의 결점만 들춘다면 17세기 문맹시대의 인간군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바보들 중의 바보’라는 평가를 받으면 되겠는가. 우리 정치인들이 페어플레이 정신을 익혀 파이를 키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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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