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정부가 개인정보 보호를 뒷전으로 미룬채 빅데이터 산업을 키우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이 개인정보를 자유로이 이용 및 제공할 수 있게끔 허용해 주는 가이드라인을 도입하는 등 보호장치를 하나 둘씩 해체하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개인정보 보호 조치를 강화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의견도 제기됐다.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진보네트워크센터,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이 11일 정부가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개인정보 보호를 불필요한 규제로 간주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산업계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개인정보를 개인의 것이 아닌 것으로 추정해 주겠다는 '비식별 정보'란 개념을 내놨다"며 "가명처리 등 기술적으로 알아볼 수 없게 처리하면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뜻인데, 이는 유럽과 미국 등 해외 선진국들이 소비자 보호 조치를 강화하는 것과 대조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빅데이터 활성화 차원에서 기업이 지닌 개인정보를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이란 절차를 거치기만 하면 이용 및 제공이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즉,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끔 개인정보를 '비식별화'하면 그 정보의 주인인 개인의 동의 없이도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해도 된다는 것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9일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금융권 빅데이터 지
원 전문기관 지정 관련 조찬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는 지난 6월30일 이같은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그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 등 해외 사례를 소개했다. 가이드라인에는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는 중"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정부의 발표와는 반대로 미국은 기업의 빅데이터 사용으로 소비자의 권리가 위축될 것을 우려해 정보주체 선택권 보장 방안을 제도화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1일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통신소비자 정보를 마케팅 목적으로 이용할 경우 '옵트인'을 도입하는 규칙안을 입법 예고했다. 옵트인은 당사자가 개인 데이터 수집을 허용하기 전까지 그 당사자의 데이터 수집을 금지하는 제도다.
EU도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추세다. EU의 제29조 개인정보 보호 작업반(Article 29 Working Party)은 개인정보를 익명화하더라도 예외없이 개인정보로서 보호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물인터넷의 경우에도 EU는 최종 이용자의 동의권 등 정보주체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웃 나라인 일본의 경우도 '해당 개인정보를 복원할 수 없도록 한다'는 원칙에 기반해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재식별 가능성이 '현저하지 않은 정도'를 개인 동의 없이 빅데이터에 활용할 수 있게 허용한 것도 문제로 지목된다.
EU는 '더 이상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정보'를 빅데이터에 쓰고 있으며, 우리나라처럼 재식별 가능성이 현저하지 않은 정도의 정보는 개인의 동의를 받도록 규제하고 있다. 영국도 EU처럼 재식별 위험이 매우 낮아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EU와 동등한 수준이거나 더 엄격한 수준으로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있다며 자화자찬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반복적인 개인정보 대량 유출과 주민등록번호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정보에 대한 식별성이 매우 높은 상태"라며 "정부는 빅데이터 산업 발전과 개인정보 보호는 함께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은 여러 부처가 함께 모여서 만든 빅데이터 활성화 방안"이라며 "일부 단체에서 개인 정보 보호를 우려하는 데, 그런 단체를 불러다가 누구인지 식별해 보라고 시키고 싶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