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국회의원은 '상왕'이 아니다

입력 : 2016-09-12 오후 2:11:41
“저는 늘 정치는 사무사(思無邪·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음)의 마음으로 해야 된다는 점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곧고 선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국민들이 신뢰하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사회 정의가 바로 서는 것입니다.” 20대 총선에 출마한 이해찬 후보가 지난 3월25일 선대위 발대식에서 세종시 유권자들에게 발표한 연설문의 일부다. 이 후보는 ‘어려움 속에서도 곧고 선한 마음으로 국민에게 신뢰와 감동을 주는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믿은 유권자들은 그에게 한 표를 던졌다. 그러나 당선된 지 불과 4개월 만에 이 의원은 이른바 ‘황제민원’, ‘갑질논란’에 휘말리며 그의 언어가 미사여구에 불과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달 18일이다. 이 의원은 자신이 사는 집근처에서 퇴비냄새가 너무 심하게 난다며 세종시청에 민원을 제기했고, 시청 직원들은 이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밤늦게 출동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해당 농민은 15톤의 퇴비를 전량 수거해 다른 곳으로 옮겼다.
 
이 의원이 살고 있는 세종시 전동면은 농촌이다. 농촌에서는 농민들이 논밭에 퇴비를 뿌리고 경작하는 것이 보편적인 일임에도 이 의원은 악취가 난다고 불호령을 내리고 민원까지 넣었다. 이 의원은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주민들의 불편사항을 해소하는 일꾼이 되기 위해 세종시에 둥지를 틀었다. 한가하게 전원생활이나 즐기는 ‘상왕’이 되기 위한 것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이 의원은 “일반적인 퇴비 냄새가 아닌 아주 심한 악취가 발생해, 인근 주민들이 피신하고 폭염에도 문을 닫고 생활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참다못한 주민들이 이 의원에게 문제 해결을 부탁했고 의원실이 세종시청에 민원 해결을 요청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프랑스에는 최근 참신한 이미지로 국민의 인기를 끄는 여성의원이 있다. 그 주인공은 극우정당인 FN의 마리옹 마레샬-르 펜. 26세인 그녀는 지난해 12월 실시된 지방선거 1차전에서 공화당의 거물급 의원인 크리스티앙 에스트로지와 맞붙어 더불스코어로 완승하는 쾌거를 이뤘다. 마레샬-르 펜은 2012년 프로방스-알프 코트 다쥐르 지방의 보클뤼즈(Vaucluse)지역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국회에 첫 입성했다. 이 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22세로 프랑스 하원의원 577명 중 막내였다.
 
마레샬-르 펜 의원은 올 2월 ‘Opinion Way’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들이 성발렌타인데이를 함께 보내고 싶은 정치인 1위에 꼽혔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녀가 지역민과 동고동락하는 진정한 일꾼으로, 기성정치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레샬-르 펜은 1989년 파리근교에 위치한 이블린(Yveline)시의 생-제르맹-앙-레이라는 부르주아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FN의 설립자 장-마리 르 펜의 손녀이자 FN의 현 대표인 마린 르 펜의 조카다. 이른바 ‘금수저’인 마레샬-르 펜 의원은 출신과는 달리 소탈함과 웃음으로 혁신의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기성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을 FN으로 끌어 모으는 중이다.
 
그녀는 자신의 지역구에 머물면서 지역구 관리에 혼신을 다한다. 그녀의 지역구인 보클뤼즈는 포도를 비롯해 각종 과일·채소 재배 등 농산물이 매출의 90%를 차지한다. 따라서 농업은 이 지역주민의 목숨과도 같다. 그런데 작년 여름 이 지역에 자이렐라(Xylella) 식물박테리아가 침입해 최소 열다섯 가구가 피해를 입었다. 이 박테리아는 포도밭과 올리브나무, 라벤더, 협죽도를 덮쳤고 프로방스-알프 코트 다쥐르의 원예생산과 묘목산업에 큰 타격을 줬다. 올랑드 정부는 자이렐라 박테리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유럽연합(EU)과 프랑스 간 기준이 애매해 시간만 끌고 있다. 이에 마레샬-르 펜 의원은 스테판 르 폴 농림수산부장관 앞으로 편지를 써서 신속한 대책을 세우고 박테리아 전염지역에서 들어오는 식품수입 규제를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호소하고 있다.
 
한국에서 총리 출신의 7선의원이 ‘황제갑질’ 논란에 휩싸인 사이, 프랑스에서는 초선 여성의원이 농촌을 위험에서 구하고자 팔을 걷어붙이고 정부를 추궁하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선거는 ‘상왕’이 아니라 일꾼을 뽑는 무대다. 유권자들이 이 점을 되새기고 한 표를 행사해야 신뢰와 감동을 주는 일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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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