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업이 백화점 2위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사업군이 비슷한 두 패션 계열사 사이에서도 경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9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최근 신세계가 대대적으로 오픈한 스타필드 하남에 한섬의 수많은 패션 브랜드 중 지미추 한개만이 입점했다. 한섬은 타임과 마인, 시스템 등 국내 브랜드 9개와 랑방과 끌로에 등 10개 이상의 해외 수입브랜드를 유통하고 있다.
2012년 신세계백화점 의정부점이 오픈할 때에도 한섬 매장은 없었다. 현재 신세계 의정부점에 입점한 한섬 브랜드는 시스템 한 곳 뿐이다. 인접 상권으로 분류되는 롯데백화점 노원점에 한섬 브랜드가 5개 입점해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명동 신세계 본점의 한섬 매장은 9곳으로 바로 옆 롯데 본점의 15곳에 비해서도 훨씬 적다.
이에 대해 한섬은 "브랜드 출점 전략 상 입점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두 회사의 사업 영역이 비슷한만큼 신세계가 자사 브랜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한섬을 배제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두 곳은 여성복 및 수입브랜드 유통에서 사업군이 겹친다. 최근 론칭한 여성복 'V라운지(신세계)'와 '래트바이티(한섬)'는 에이지리스 디자인과 가성비라는 비슷한 콘셉트를 내세웠다. '델라라나(신세계)'와 '더캐시미어(한섬)'는 캐시미어 의류 영역에서 겹치며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내년 론칭을 준비 중인 핸드백 브랜드도 한섬의 '덱케'와 경쟁 구도에 놓이게 된다.
조만간 한섬과 계약이 종료되는 것으로 알려진 명품 브랜드 '끌로에'의 유통권에 신세계인터내셔날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현재 한섬은 온라인몰인 더한섬에서 판매 중인 끌로에 전제품에 대해 세일을 진행 중이다. 250만원대 핸드백을 180만원대에 판매하는 등 할인폭도 크다. 끌로에의 세컨브랜드인 '씨바이끌로에'의 경우 대부분 제품을 반값에 팔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반값 할인을 통해 계약이 끝난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깎는 '못 먹는 감 찌르기' 식의 행보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검토 중인 SK네트웍스 패션부문 인수가 이뤄질 경우 양사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한섬의 매출은 6154억원으로 1조1176억원인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SK 패션 부분(5657억원)을 합치면 1조1811억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과거 한섬이 현대백화점에 인수될 때 셀린느 같은 수입 브랜드가 신세계인터내셔날로 많이 넘어가면서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하이엔드, 한섬은 중고가 브랜드를 주로 맡게 됐다"며 "현대백화점이 SK네트웍스의 패션사업을 인수하면 수입브랜드 판권 관리 경쟁력을 다시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V라운지'(왼쪽)와 한섬의 '래트바이티'. (사진제공=각 사)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