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기자] 갤럭시노트7의 발화 원인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되면서 업계에서는 기존에 밝혀지지 않았던 배터리의 추가 결함부터 설계 오류 등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인쇄회로기판(PCB) 고도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주장도 이중 하나다. 한국과 미국 당국의 조사 결과, 외부 요인이 아닌 제품 자체에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판명될 경우 후폭풍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수 있다.
11일 삼성전기를 비롯한 복수의 전자부품업계 관계자들은 "갤럭시노트7에 첫 적용된 12층 PCB가 발화의 원인일 수 있다"고 지목했다. 홍채인식, 방수·방진 등 새로운 기능들이 다수 추가된 갤럭시노트7은 보다 고도화된 형태의 PCB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무리하게 층을 높이다 보니 문제가 생겼을 것이란 의견이다.
갤럭시노트7 발화 제품과 내부 모습. 사진/온라인커뮤니티·ifixit 캡처
PCB는 컴퓨터·스마트폰 등 전자산업 전반에서 두루 사용되는 부품으로, 페놀이나 에폭시 등 절연판에 구리 등 도체를 입혀 전기회로를 형성한 기판이다. 높게 층을 쌓을수록 회로 밀도가 증가한다는 장점이 있다. 한 층에 설계할 수 있는 회로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더 많고 강력한 기능들이 필요할수록 다층으로 구성하는 것이 유리하다.
다만 층이 높아질수록 얇은 절연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공정비가 높아지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보급형 제품보다 프리미엄 제품에서 고층의 PCB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 절연체층이 얇아지면서 제품 결함 등의 오류가 발생할 여지도 커진다. 층 간의 전기 흐름을 막는 절연체 본연의 기능이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갤럭시노트7의 발화도 PCB가 개연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갤럭시노트7은 12층 0.6t(1t=1000㎛) PCB가 처음으로 사용됐다. 통상적으로 보급형 모델은 6~8층 PCB, 갤럭시S7·아이폰6s·LG G5 등 프리미엄 모델에는 10층 0.6t PCB가 사용됐다.
한 업계 전문가는 "PCB는 유전체층이 과도하게 얇아지다 보면 열이나 충격에 분리될 수 있다"며 "현재 기술로는 해당 두께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PCB 제조사에 유전체 원재료를 공급하는 대만 EMC가 보장하는 두께도 갤럭시노트7에 사용된 PCB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절연층이 얇아지면서 신뢰성 문제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며 "제조사 쪽에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이를 인지하고 통제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갤럭시노트7의 PCB 결함은 삼성전기가 공급한 물량에 한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달 갤럭시노트7의 글로벌 리콜 발표 당시 삼성전자는 이미 삼성전기에 출하정지 처분을 내렸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고위 임원도 한동안 삼성전기에 상주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삼성전기의 물량을 또 다른 PCB 제조사 코리아써키트에 넘기면서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까지 상세히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층 0.6t PCB를 고집하면서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는 주장이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삼성전자로서는 기술력에 대한 의문과 함께 시장 신뢰의 추락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미 삼성전자의 최대 전략시장인 미국은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북미 지역에서의 삼성전자 시장점유율은 30%로 애플(29%)을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미국에서는 갤럭시노트7 신제품 교환 이후 5건의 발화 제보가 이어졌고, 기내에서 연기가 발생한 첫 번째 제보건에 대해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버라이즌, AT&T 등 미국 주요 이통사들은 소비자 안전을 위해 판매와 교환을 중단했고, 삼성전자도 생산과 글로벌 판매 중단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CPSC는 "합당한 조치"라고 환영하는 동시에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소비자들은 제품 전원을 끄고 사용을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미국 연방항공청(FAA)도 기내 사용과 충전, 위탁수화물 금지 등의 지침을 전달했다. 국내에서도 국가기술표준원과 국토부 등이 비슷한 권고사항을 내렸다.
갤럭시노트7이 사실상 단종 수순에 접어들자 이날 유가증권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전일 대비 8.04% 급락한 154만5000원에 장을 마쳤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사용 중지를 권고한 뒤 첫 거래일인 지난달 12일(6.98%) 이후 최대 낙폭이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이틀 동안에만 24조원가량 증발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