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꿈·행복 요리하는 '맛있는 제주' 요리사"

(피플)박영준 제주신라호텔 메인셰프
폐업위기 영세식당 재기 돕는 사회공헌활동 앞장
"자신감 잃은 영세식당 주인에 체계적 요리법 전수에 보람"

입력 : 2016-10-27 오전 8:00:00
[뉴스토마토 이성수기자] 경영난으로 폐업 위기에 처한 영세식당이 박영준 제주신라호텔 메인셰프의 손끝을 거치자 완전히 새로운 맛집으로 변신했다.
 
호텔신라(008770)가 2013년 10월부터 펼치고 있는 사회공헌활동 '맛있는 제주 만들기'는 제주도의 영세식당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현지 영세식당을 선정해 인테리어부터 서비스 교육, 메뉴 개발, 요리법까지 전수해 완전히 새로운 식당으로 재오픈시켜주는 이 프로그램으로 재기한 식당은 15곳에 달한다. 발생하는 비용은 모두 호텔신라가 부담하며, 메뉴개발과 요리법 전수는 박 셰프가 직접 맡았다.
 
'맛있는 제주 만들기'는 단순히 식당을 오픈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개장 이후에도 음식 맛, 위생, 서비스 등 오픈 초기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호텔내의 식자재담당과 안전관리,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부서가 참여해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있다. '맛있는 제주 만들기'는 사회공헌활동의 선순환 모델로도 진화하고 있다. 실제 이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재기에 성공한 경영주들은 재오픈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모여 자발적 봉사모임을 만들고 독거노인과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수시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셰프도 경영주들의 봉사모임에 수시로 참여해 함께 봉사활동을 펼치며 경영주들과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잇고 있다.
 
그는 이 활동을 통해 2년 연속 삼성 그룹 사회공헌상을 수상했고,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박영준 제주신라호텔 메인셰프(왼쪽)가 '맛있는 제주만들기' 11호점 오복자 행복맛집 사장에게 조리법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호텔신라)
2004년 호텔신라에 입사해 13년간 조리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 셰프는 베이커리부터 양식과 한식, 중식 오리엔탈 뷔페를 두루 거쳐 '맛있는 제주 만들기' TF팀의 오픈 멤버로 참여해 영세식당의 신메뉴를 개발하고 경영주들에게 요리법을 전수하는 일을 맡고 있다. 식당을 재오픈하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 동안 경영주와 상당한 시간을 보내면서 식당영업에 필요한 모든 부분에 대한 교육을 박 셰프가 진행하고 있다.
 
현재 박 셰프는 '맛있는 제주 만들기' 16호점 재개장을 앞두고 신메뉴 개발이 한창이다. 이번에 선정된 식당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에 있는 소규모 음식점으로 햄버거, 컵밥, 닭강정등을 판매해온 20평 규모의 작은 식당이다. 영업주는 홀로 아이 둘을 키우며 산모도우미, 식당종업원, 청소용역 등의 일을 전전하다가 식당을 운영했지만 영업난으로 초기 투자비에 대한 이자도 아직 갚지 못하는 등 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박 셰프는 상권조사와 설문조사, 경영주와의 의논 등을 거쳐 건강식 수제 순두부와 돼지 갈비찜으로 메뉴를 고르고 신메뉴의 레시피 등을 개발 중인 단계다.
 
'맛있는 제주 만들기' 프로젝트는 식당이 선정되고 재오픈이 이뤄지기까지 약 2개월의 기간이 소요된다. 2013년 10월부터 지금까지 15곳을 재오픈시키고 16번째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니 3년동안 거의 쉬지않고 달려온 셈이다.
 
박 셰프는 '맛있는 제주 만들기' 식당이 선정되면 가장 먼저 이창열 총주방장과 함께 해당 식당을 방문해 경영주와 개인면담을 한다. 주로 식당의 메뉴나 하루 매출, 부채 등 현재 운영상황을 확인하고, 경영주가 팔고 싶은 메뉴가 있는지 등의 의견을 반영한다.
 
"사업장 주변 거주인구부터 경쟁식당 분석까지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합니다. 이렇게 해야 주변상권의 고객층을 알 수 있고, 메뉴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메뉴 선정 과정에서는 여러 후보 메뉴에 대한 최신 트렌드 조사를 위해 전국을 돌며 유명 맛집 탐방에도 나선다. 그 후 호텔로 돌아와 여러 셰프와 지배인들과의 자체 품평회를 거쳐 최종 메뉴 콘셉트를 선정하게 된다. 대표 메뉴는 대부분 제주 향토 식자재를 사용한 음식이다. 외국인들에게 제주의 독특한 식문화를 알릴 수 있고 또한 제주에서 재배되는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조리하다 보니 지역주민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경영주에 대한 교육도 박 셰프의 몫이다. 보통 영세식당 경영주들은 조리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 칼 가는 법부터 식자재 입고, 전처리 방법 등의 기본교육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이어 항상 일정한 맛을 낼 수 있도록 표준 레시피를 전수해주고, 재래시장과 식자재마트 등을 함께 방문해 장보는 방법과 식자재 선별법 등도 알려준다. 주방에서 지켜야 할 위생과 안전에 대한 교육도 이 기간에 이뤄진다.
 
최근 TV 방송을 중심으로 '셰프'가 인기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와중에 '특급호텔 주방장'이 동네 작은 식당을 돌며 메뉴를 발굴해주고 전수해주는 모습은 쉽게 떠올려지지 않는다. 호텔 본업과 영세식당 재오픈 지원 활동을 병행하기도 결코 쉽지 않을 터. 하지만 박 셰프는 손을 내저으며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특급호텔 주방장이라고 해서 특별한건 없습니다. 저는 좋은 시설과 훌륭한 선배들 밑에서 체계적으로 음식을 배웠지만, 영세식당 경영주들은 제대로 배워서 운영하지 못합니다. 오랫동안 생활고로 자신감을 잃어버린 분들에게 체계적으로 요리를 전수해드려 재기를 돕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40~50대의 경영주들에게 젊은 청년이 요리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는 부담이었다. 박 셰프는 이 같은 부담을 줄이기 위해 경영주들과의 스킨십을 더 늘렸다. 함께 올레길을 걷고, 호텔에 초청해 음식도 대접하고, 설문조사도 함께 다니며 자연스레 많은 대화를 나누며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
 
그동안 15곳의 식당을 변신시킨 박 셰프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경영주는 가장 최근에 맡았던 15호점이었다. 커피숍으로 운영되던 곳을 음식점으로 완전히 탈바꿈시켜 재개장을했는데, 3년 전부터 인근에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대거 몰려오면서 가게 운영이 힘들어진 사례였다. 식당 경험이 전무한 경영주에게 시장보는 법부터 칼 가는 법, 음식주문이 들어왔을 때부터 주문에 따라 음식을 조리하고 제공하는 방법 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가르쳐줘야 해 다른 곳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지금은 하루 평균 6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지역의 맛집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경영주님은 아직도 저를 보면 '셰프님 전 아직 신생아에요. 신생아는 많은 보호가 필요하니 앞으로 더 잘 부탁드려요'라는 농담을 던지곤 합니다."
 
제주에서 근무한지 15년이 지났다는 박 셰프의 고향은 사실 경상남도 창원이다. 그는 지난해 제주 출신 동갑내기 아내와 결혼해 최근 득남했다. 제주에 완전히 정착한 박 셰프는 이제는 제주를 위해 일하겠다는 포부다. 이미 제주관광대학교에서 제주향토음식 조리 전문인력반 강의를 맡고 있으며, '제주방문 관광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메뉴선택요인과 고객만족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도 지난해 발표한 바 있을 정도로 박 셰프는 제주도에 녹아있다. 이런 박 셰프의 꿈도 훗날 제주 향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잘 표현한 음식을 선보이는 식당을 여는 것이다.
 
"예전에는 호텔 조리사로서 최고 식자재, 최고의 조리법으로 요리를 해서 고객에게 멋있는 요리를 제공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왔지만, 요즘은 '맛있는 제주 만들기'를 통해 대중의 입맛을 골고루 만족시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맛있는 제주 만들기' 활동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식견이 생겼다. 다른사람을 기쁘게 했을 때 자신이 더 즐거워하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영업주들이 장사가 잘돼 행복해 할 때마다 저 역시 너무 기쁩니다. 호텔에서 배운 작은 재능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과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맛있는 제주 만들기'를 통해 재기에 성공한 식당 경영주들이 모여 만든 봉사단체 '좋은인연'이 지난해 10월 제주시 연동 연동 경로 회관에서 진행한 '맛있는 밥상 나눔행사'에 박영준 제주신라호텔 메인셰프(왼쪽 네번째)가 참여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호텔신라)
 
이성수 기자 ohmytru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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