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기자]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과 국무회의 회의록 등을 사전에 입수해 일부 수정하거나 각종 인사·안보문건까지 넘겨받았다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의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씨와 그 주위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이 어디까지 미쳤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지 여부도 관심이 모아진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26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뒤에서 조정하고 그 각본대로 움직였다면 대한민국은 완전히 무력화된 것”이라며 “반드시 조사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겨레>는 이날 “최씨가 차은택 감독, 고영태씨 등이 참석한 비선모임을 주재하고 그 과정에서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중 한사람인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거의 매일 30cm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전달했다”는 이성한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이 총장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그 자체로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이며, 박 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우 원내대표도 “어제 (기자회견에서) 구체적 해명을 하지 않으셨는데, 박 대통령도 조사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 자신이 지난 2014년 12월 최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가 국정에 개입한 의혹이 담긴 청와대 내부문건 유출사건이 발생하자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박 대통령의 발언 직후 문건유출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박관천 경정과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현 민주당 의원) 등을 소환 조사했다.
이와 관련해 김현웅 법무부장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대통령도 수사대상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민주당 박홍근 의원의 질문에 “헌법 84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있으며 수사도 받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다수설”이라는 말로 선을 그었다.
문제는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 여부와는 별도로, 청와대 입장에서 현 상황을 돌파할 마땅한 탈출구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사안 자체가 워낙 심각한데다 ‘개헌’ 카드도 이미 사용해버린 시점이라 별다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력 대선주자 중 한명인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전날 “오늘로 대통령발 개헌 논의는 종료됐음을 선언한다”고 공표하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하야요구까지 나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무소속 윤종오·김종훈 의원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의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정치적 도덕적 권위를 상실했다”며 즉각 하야를 촉구했다.
각 대학을 중심으로 시국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박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학생들은 이날 ‘최순실 게이트 해결을 바라는 서강인 일동’ 명의로 발표한 시국선언문에서 “비선실세의 권력이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국기를 흔드는 현 정부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며 “대통령은 직접 국민 앞에 사과하고, 진상규명의 전말이 밝혀져 국민이 대통령으로 납득할 수 없다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각종 특혜의혹으로 최경희 총장이 사퇴하기까지 한 이화여대 총학생회도 “박 대통령은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고 비선실세인 최순실에게 국정을 넘겨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했다”며 향후 밝혀질 진상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이 와중에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1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 지지율은 25%로 취임 후 최저치를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관위여론조사공정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후 언론에서 최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지속 보도한 점을 감안하면 지지율은 더욱 하락했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청와대 비서진 전면개편과 내각 총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이날 박 대통령에게 당적을 버리고 국회와 협의한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인사를 국무총리로 임명한 후 국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길 것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왼쪽 두번째)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26일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