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반겨주는 부모 없이 어두컴컴한 집에서 혼자 저녁을 보낸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주방을 기웃거리지만 혼자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은 많지 않다. 아이는 그냥 굶거나 혹은 동네 편의점, 분식집에서 끼니를 떼운다. 조금만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먹을지'보다 '무엇을 먹을지'를 고민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생활 형편이 어려워 굶주리고 있는 이웃이 많다. 국내 결식아동은 40만명에 달한다.
소득 양극화는 먹거리 양극화를 불러오고, 이는 건강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 결식아동을 돕는 기업이 있다. 사회적협동조합 '행복도시락'이다. 행복도시락은 전국에 27개 조합이 정보를 공유하며 배고픈 아이에게는 도시락을, 취약계층에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는 행복도시락에게 특별한 해이다. 행복도시락이 설립된 지 10주년이자 2기 이사장이 새롭게 취임했다.
[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따뜻하면서도 편안했다. 사회적협동조합 행복도시락을 이끌고 있는 한경이 이사장의 첫인상이다. 한 이사장은 올 4월 행복한도시락 2기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대전점 조합장이도 한 그는 이사장으로 취임후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서울 사무국을 오가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행복도시락은 위생과 영양면에서 안전한 도시락을 만들어 결식아동들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취약계층을 고용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2005년 당시 제주도 등에서 발생한 '건빵 도시락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결식아동들에게 제공되는 도시락이 부실한 야채와 건빵을 사용해 제공되는 것이 밝혀지면서다. 그런면서 아동급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 그리고 비영리단체가 함께 사업모델을 구상했다. 이것이 행복도시락의 탄생 배경이 됐다.
매일 1만2000식 도시락 공급
행복도시락은 지난 2006년 SK그룹의 지원으로 사업이 시작됐다. 이후 2013년부터는 기업의 지원이 아닌 후원을 받는 독립적인 사회적협동조합의 모습을 갖췄다. 행복도시락은 2006년 서울중구점을 시작으로 전국 27개 행복도시락 센터에서 매일 1만2000식의 아동과 노인급식이 공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약 330명의 사회적 일자리도 창출하고 있다.
한경이 이사장은 사회복지사로 활동해왔다. 그러면서 행복도시락이 생기기 전부터 대전의 한 지역자활센터 내에서 공공급식을 납품했다. 결식아동들에게 제공되는 식권에 한계가 뒤따르자 직접 밥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다. 당시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결식아동들에게 식권을 제공해 지정된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정된 식당이 주로 분식집이나 중국집에 제한돼 아이들의 영양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질적인 문제 뿐아니라 양적인 문제도 있었다. 식권을 한꺼번에 써버리면 굶어야 하는 날도 생기게 된다. 규칙적인 식사가 불가능한 것이다.
"한계가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끼니를 거르지 않고 먹는 것이 중요한데 식권은 그렇게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그러면서 자활센터에서는 도시락 사업을 했고, 행복도시락 사업을 알게돼 공모한 것이죠." 행복도시락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행복도시락을 알게 된 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 이사장은 "10평 남짓한 곳에서 시설도 많이 부족했다"면서 "기업의 지원으로 시설도 갖추고 체계적인 교육과 관리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행복을 전하는 도시락"
행복도시락이 제공하는 것은 '밥'만이 아니다. 희망도 함께 전한다.
한파가 몰아친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도시락을 제공해야했다. 눈보라를 뚫고 한 노인의 집에 도시락을 전했다. 할머니는 오히려 직원들을 걱정해주며 감사를 표했다. "식사 때에 맞춰 도시락을 준비하려면 식사시간 훨씬 이전부터 준비해야 해요.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새벽에 일을 시작해야 하죠. 일은 힘들지만 이렇게 받는 분들이 좋아하시니 없던 힘도 납니다."
일하는 사람도 변화된다. 도시락 지원을 받았던 취약계층이 도시락 사업의 일자리를 얻은 후 정부 지원 없이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신용불량자였다가 행복도시락에서 일하면서 빚을 탕감한 사례도 있다. 한 이사장은 "도시락을 먹는 이들과 또 일하는 이들이 변화하는 것이 우리가 계속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진행된 임시총회에서 조합장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행복도시락
'지속가능'은 가장 큰 과제
행복도시락도 기업이다. 전국의 27개 행복도시락 조합 대부분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수익도 확보해야 한다.
"초창기에는 돈버는 사업단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공급식에만 집중하면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장기적인 계획도 중요해졌죠. 일단 교육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였고, 외부에서 하는 유료도시락 비중도 높여가고 있습니다."
유료사업으로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예비군 도시락 사업이다. 또 학교급식 개보수 시 위탁급식을 하거나 야유회 행사 등에 도시락을 판매하며 수익을 얻는다.
정부나 기업의 지원은 한시적이다. 때문에 행복도시락은 생존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다. "어떤 조합은 쌈짓돈 털어서 매장을 내기도했습니다. 실패한 사례는 성공의 발판이 되기도 하죠. 실패사례를 공유하면서 더 보완하고 있고, 이를 통해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결식아동들에게 제공하는 급식카드가 도시락으로 전환되는 사회 분위기도 행복도시락으로서는 긍정적이다. 행복도시락은 지난 7월부터 서울시가 진행하는 ‘집밥 프로젝트’에 수행기관으로 함께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결식아동을 위해 따뜻한 집밥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행복도시락의 사업과도 일맥상통한다. 결식아동 급식카드의 한계를 도시락으로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행복도시락은 이달 1일 10주년 행사를 가졌다. 10년을 걸어온 행복도시락은 앞으로의 10년을 기대하고 있다. 한경이 이사장은 "각각의 지역에서 조합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며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새로운 사업모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뒤에는 행복도시락으로 인해 더 나은 사회가 되길 꿈꾼다. "취약계층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결식 이웃에게 양질의 도시락을 제공해줄수 있는 곳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할겁니다." 한경이 이사장의 첫인상에 대한 기자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