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27명이던 직원이 5명이다. 정부 긴급운영자금 5억원이 떨어지면 그날로 끝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일성레포츠의 이은행 회장은 지난 26일 서울 중랑구 본사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한숨부터 내쉬었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그는 폐암 수술로 끊었던 담배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음주 횟수도 크게 늘었다. 그는 “하루에도 4~5차례 빚 독촉 전화가 오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며 인터뷰 내내 고개를 내저었다.
이은행 일성레포츠 회장이 개성공장과 서울 본사를 왕래했던 5톤 트럭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이 회장은 1989년 일성레포츠를 설립, 올해로 28년째 봉제사업 한우물만 파온 기업인이다. 아웃도어의류나 스포츠의류 등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해 대형 브랜드에 납품했다. 큰 회사는 아니지만 견실하게 운영해 거래처와의 신뢰도 깊었다.
회사가 개성공단에 들어간 것은 지난 2007년. 갈수록 커지는 국내 인건비 부담에 당초 베트남이나 중국으로 가려 했지만, 정부를 믿고 40억원을 투자해 개성공단에 생산라인을 만들었다. 이 회장은 “개성공단 부지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불하했다. 국가 공공기관이 50년 임대 매각을 한 것”이라며 “그것보다 안전하고 보장된 투자처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에 우리 말고도 여러 기업들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초반에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북한이 제공한 인력들은 임금이 저렴하고 나이도 어렸지만 봉제기술이 없어 처음부터 가르쳐야 했다. 국내 기업들도 충분한 물량 주문을 주지 않았다. 정치적 리스크로 납품을 맞추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선제적 조치였다. 2012년까지 적자가 이어졌다.
2013년 4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 오히려 반전의 계기가 됐다. 9월 재가동이 되고, 북측 노동자들이 “이러다가 회사 망하는 것 아닙네까”라고 걱정하면서 생산력이 부쩍 늘어났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통일대박론’ 등에 힘입어 국내 기업들의 주문도 증가했다.
2015년에는 창사 이래 최대 매출액인 60억원을 달성했고, 올해는 100억원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지난 2월10일 정부가 공단을 전면 폐쇄하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이 회장은 “정부가 사전에 기업들에게 (폐쇄 방침을)알려주고 한 달만 시간을 줬어도 이렇게까지 피해가 막대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개성공장에 30억원가량의 완제품과 기타 원·부자재들이 묶여있다”고 가슴을 쳤다.
개성공단 폐쇄 이후 직원들이 떠나고 황폐해진 일성레포츠 본사 사무실 모습이다. 사진/뉴스토마토
가장 큰 문제는 40억원에 달하는 원·부자재 값이다. 그간 거래처로부터 원·부자재를 외상으로 먼저 받아 개성공장에서 물건을 만들고 남쪽 브랜드에 납품해 외상을 갚는 구조가 이어졌지만,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그 흐름이 끊겨버렸다.
이 회장은 “60여개 업체로부터 40억원을 빚졌다. 그러나 정부는 원·부자재 피해액의 70%를, 그것도 22억원 상한선을 정해 지원했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20억원을 받아 거래처에 절반씩 갚았지만, 4~5곳은 소송을 걸었고 10곳은 아예 돈 받는 것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회장은 정부가 언론이나 국민들에게 홍보하고 있는 각종 지원책들은 그 상당수가 과장되거나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원을 많이 해주는 것처럼 말하는데, 사실은 은행에서 빚을 지라는 이야기”라며 “국내에 대체 공장을 지으라고 하는데 공장 짓고 어디서 노동력을 구하나. 또 그때까지 어떻게 살란 말인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