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8일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국회가 총리를 추천해주면 임명해서 내각을 ‘통할’하도록 하겠다”고 말한데 대해 야당에서는 일방통행식 행보를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며 비판했다.
행정학에서 ‘통할’이라는 말은 상급 행정기관·상급자가 하급 행정기관·하급자의 행위를 지휘·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현행법상 행정 각 부는 대통령의 통할 하에 있으며 국무총리는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내각에 대한 지휘·조정권을 국회가 추천한 총리에게 주겠다는 것으로, 사실상의 2선 후퇴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청와대가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등 야당과의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맞췄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김병준 총리후보자의 지명철회와 국회의 총리추천, 대통령의 2선 후퇴 등을 주장해왔다.
새누리당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의 오늘 국회 방문은 국회의장을 만나 그동안 야당이 요구해온 사안들에 대한 뜻을 함께하기 위한 자리였다”며 “막혀있는 정국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유승민 의원도 “일방적 총리 지명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태수습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라며 “야당의 주장을 일부 수용한 만큼 이제는 정치권이 해결책을 찾아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대통령 발언의 모호성을 지적하며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박 대통령이 말한 ‘총리의 내각 통할’ 제안이 실제 총리에게 조각권을 주고 간섭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운영권한을 주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과 정 의장의 면담 후 기자들을 만나 “총리에 내각 지명권을 주고 청와대가 내정문제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어렵냐”며 “(박 대통령이) 허심탄회하게 내려놓으러 왔다는 말을 했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야당이 요구하고 있는 대통령의 2선 후퇴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인지, 계속해서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것인지 모호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박 대통령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없었다”며 “지금 민심은 박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 2선 후퇴 등을 말하는데 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면 받겠다는 식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의 이날 제안은 국회에 던져놓고 합의하라는 시간벌이용이라는 것이다.
9일 오전 예정된 야3당 대표 회담에서도 회동 내용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국민 여론과 야당 내 강경한 분위기를 봤을 때 박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할 여지는 적어보인다.
야당은 이날 회동이 이뤄진 과정에 대해서도 비판을 내놓고 있다. 국회의장실 등에 따르면 청와대는 어제 정 의장과의 회동을 제안할 때 여·야 대표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의장실에서는 ‘정 의장을 만나는 것보다 여·야 영수회담이 먼저 아니냐’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오전 브리핑에서 “야당 쪽에도 회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전히 협조, 조율 중에 있다”고 말한 것과 배치되는 부분이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대통령이 오늘도 국회에 오는 길에 언론을 통해 야당 대표들을 모이라고 하시는 모양”이라며 “그렇게 불러들여 민심을 읽겠다 하지 말고 (청와대) 문을 열고 나가 시민들을 만날 것을 권유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이 꼬인 정국을 풀기는 커녕 갈등을 장기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청와대와 야당 사이 중재역할을 자임해야 할 여당인 새누리당은 계파 갈등에 여념이 없다. 이날도 비박(박근혜)계 의원들은 나경원 인재영입위원장이 당직을 사퇴하는 등 친박(박근혜) 일색인 당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오는 12일 '전국당원보고대회' 형식의 대규모 당원 집회를 공언하는 한편 그 이전에 대통령이 결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새누리당 김도읍·민주당 박완주·국민의당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는 오는 11일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긴급현안질의를 개최하는데 합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왼쪽),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8일 오후 정세균 국회의장과 회동을 마친 뒤 의장실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