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트럼프 시대, 우리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입력 : 2016-11-10 오전 11:24:15
최한영 정경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20대 총선을 앞두고 인재영입에 열을 올리던 올해 2월18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진두지휘했던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이후 주 유엔(UN)대사·삼성전자 해외법무 사장 역임)이 입당했다. 문득 김 전 본부장이 지난 2010년 말 펴낸 책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 우리와 북한 간 FTA 체결에 대한 청사진을 기술했던 것이 떠올랐다. 기자가 입당 기자회견에서 김 전 본부장에게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남·북 FTA에 대한 복안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조치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기자회견 8일 전 통일부가 북한의 4차 핵실험 등을 이유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한데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해 던진 질문이었다(최근 들어서는 이 과정에도 이른바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중심에 서있는 최순실씨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기자는 속으로 ‘개성공단 중단조치는 부적절했다’ 정도의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답변은 뜻밖이었다. “개성공단을 폐쇄할 수도 있어야 한다. 다만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있어야 한다. 또한 한·미·일 공조차원에서 강한 조치를 취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우리도 대가를 받아야 한다. (한국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로) F-35 대신 F-22 랩터를 인수할 수 있는지, 3000톤급 핵잠수함 건조를 (미국이) 허용한다든지…”. 답변을 받아적으며 도리어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미 FTA 체결을 이끌었던 전력에 이 발언까지 더해지며 그는 당시 민주당 내 이른바 ‘정체성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결국 당내 경선(인천 계양갑)에서 탈락하며 조용히 사라지는 비운을 겪는다.
 
9개월 전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는, 다름 아닌 지난 8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많은 이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를 놓고 우리 경제에 충격파가 몰아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당일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개인과 외국인을 막론하고 매도가 이어지며 증시가 하락했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금값과 일본 엔화 가치는 올랐다. 안그래도 좋지 않은 우리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이 후보 시절 줄기차게 '미국인의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다'며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겠다고 공언한데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한·미 FTA 재협상으로 양허(관세협정을 맺은 나라끼리 최혜국 대우를 해 관세율을 인하하는 것)정지가 이뤄질 경우 내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수출 손실액이 269억 달러(약 30조6848억원), 사라지는 일자리 수도 24만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트럼프가 공약 이행에 나선다면 충분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이 ‘대선용 발언이었을 것이다’는 주장은 논외로 하자. 만일 재협상 우려가 현실이 됐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답은 간단하다. 총성만 없지 실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협상장에서 목숨걸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 김 전 본부장도 책에서 ‘무역현장은 국익을 위해 개처럼 싸우는 동네’라고 기술한 바 있다. 2월 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이 점을 지적하며 자신의 역량을 강조하고자 했을 것이다. 통상문제를 포함한 모든 외교의 본질은 언제나 자국의 실리추구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리더의 역할이다. 판세를 제대로 읽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언제나 리더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영화 <벤허>의 클라이막스로 꼽히는 전차경주 직전, 주인공 유다 벤허(찰톤 헤스톤 분)는 네 마리의 말을 필요한 자리에 배치하고 어루만지며 각각의 역할을 주문한다. “알데브란, 첫 바퀴에서 이기면 안돼. 마지막 바퀴에서 이겨야해”, “안타레스, 너는 우리의 닻이야”. 결과는 그의 우승이었다.
 
‘보호무역주의’를 외치고 자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권 초기 공세를 막기 위해 우리 측 리더들은 어디까지 준비되어 있나. 지금 우리의 경제·외교파트 수장들은, 그리고 대통령은 휘하에 능력 있는 참모들을 두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힘든 싸움에 대비하고 있나. 그리하여 2007년 4월 한·미 FTA 협상 타결 당시 우리 측 협상단에 진절머리를 친 미국 대표단이 다들 그날 밤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가게끔 한 일을 반복할 준비가 되어 있나. 트럼프 당선으로 초래되는 대책마련을 위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결과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보고받은 박근혜 대통령은 항상 그래왔듯이 미리 작성된 원고를 읽고 있었다. “인수위 단계부터 미 차기 행정부와의 협력 관계를 조기에 구축하여…”

최한영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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