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영 정경부 기자
#.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긴급현안질문이 진행되던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장.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이 황교안 국무총리를 대상으로 짧은 질의를 마친 후 준비된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1960년 4월24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기 이틀 전 야당 대표 허정을 수석장관인 외무장관에 지명했다. 4월26일 이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허정 과도내각이 출범한다. 과도내각은 3·15부정선거 사범을 처단하고,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고…”. 듣던 중 ‘경제민주화’라는 단어에 귀가 쏠렸다.
최순실 게이트를 둘러싼 국민들의 분노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동안 뜸했던 경제민주화에 대한 언급도 최근 들어 잦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지난 7·8일 당내 회의에서 연이어 “최순실 게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결국 정경유착”이라며 “대한민국 경제 생태계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가 해답”이라고 주장했다.
우 원내대표의 이 같은 주장은 최순실씨에게 돈을 낸 기업들이 피해자가 아닌, 이권을 취하기 위해 정치권력과 결탁한 공범이라는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1960년대 이후 우리 경제가 압축성장 과정을 겪으며 소수 대기업 독주체제가 생긴 것만은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대기업은 ‘금전’이 필요한 정치권력과 결탁하는 방법으로 유·무형의 사업상 편의를 제공받았다. 이번 사건에서 정체불명의 재단이 수백억의 자금을 기업들로부터 모금할 수 있었던데도 이러한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문제는 제어수단이 없을 경우 각 집단의 이러한 탐욕은 끝없이 이어진다는 점에 있다. 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도 지난 2012년 말 펴낸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에서 “재벌은 많은 기업을 거느리는 집단으로 경제력이 집중될 경우 그 집중이 탐욕을 더 부리는 쪽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자신들의 권력을 연장하고자 하는 정치집단의 욕망이 더해지면 그 파괴력은 더 커진다. 이와 같은 정부와 기업, 여기에 국책은행까지 더해진 결탁구조를 놓고 김 전 대표는 지난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철의 삼각동맹’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우리 사회의 부패 사슬 구조가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다시 한 번 백일하에 드러난 만큼 그의 말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각 기득권 집단이 자리를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이 동맹의 사슬을 끊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부패 청산 노력이다. 쉽지 않다. 역대 정권들이 초기 부정부패 척결을 들고 나왔지만 임기 말 스스로의 부패문제에 얽히며 스러진 것이 이를 반증한다.
지금으로부터 120여년 전, 동학농민전쟁에 나섰던 농민들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들고 나왔다. 이를 두고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고 설명한 것을 보며 왜 지킬 보(保)를 쓰지 않고 도울 보(輔)를 쓰는지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도올 김용옥은 “바르게 하는 것이다. 부패를, 썩은 것을, 그릇된 것을 바르게 해야만 백성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각종 부패를 뽑아내야 한다는 주장은 세기를 넘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경제민주화 주장이 반세기를 넘어 지속되는 것처럼 말이다.
동학이 내놓은 사회개혁 주장은 1894년 우금치 전투의 패배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민주당은 경제민주화를 놓고 어떤 결과를 내놓을 것인가.
최한영 정경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