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온라인 간편결제와 디지털 화폐가 금융시장에서 급성장함에 따라 정보를 분산 저장하는 차세대 보안시스템 '블록체인(Blockchain)'도 핵심 보안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은행권에서는 거북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증권쪽과 달리 블록체인 도입으로 인한 실익이 적은 데다, 이 업무와 관련한 내부 규정도 수립되지 않은 탓이다. 이에 따라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은행권 공동 블록체인 구축' 과제를 연내에 완료할 수 있을지 불확실해졌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권 공동 블록체인 컨소시엄' 출범을 앞두고 은행권이 증권업계에 한참 뒤쳐지는 모습이다.
증권업계는 지난 1월부터 정보기술(IT)위원회를 발족하고 공동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비롯한 신기술 도입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인 반면, 은행권은 아무런 협의체도 구성하지 않았다. 실제로 증권업계는 그동안 증권선물전산협의회(CIO) 및 증권선물정보보호협의회(CISO)와 공동으로 블록체인을 연구해왔다.
블록체인은 고객의 거래정보를 중앙 서버에 저장하지 않고 네트워크의 여러 컴퓨터에 분산해 저장하는 기술로 현존하는 가장 안전한 보안시스템으로 평가받는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증권쪽이 지난봄부터 자발적으로 블록체인을 준비해 온 반면, 은행들은 가을부터 관련 논의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며 "시작이 늦었으니 활성화 시점도 자본시장 쪽 보다는 뒤로 밀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0월24일 ‘제12차 핀테크 데모 데이’에 참석해 “미래 금융의 핵심 인프라로 떠오르는
블록체인 연구를 위해 연내에 금융권 공동 컨소시엄을 출범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은행권의 블록체인 논의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이미 은행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서 블록체인 도입 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적기 때문이다. 비용절감 효과도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기존 은행 시스템과 호환을 이루게 하려면 오히려 비용이 더 들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증권사의 경우 장외시장이나 채권시장에서 채널을 구축할 때부터 블록체인을 적극적으로 적용해 왔다"며 "이와 달리 금융결제원이 중앙에서 관리하는 시스템이나 기존 금융 인프라를 잘 이용해온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블록체인에) 큰 유인이 없다"고 말했다.
블록체인을 관장할만한 법적 기준이나 규제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은행 업무에는 개인의 민감한 정보가 수반되기 때문에 은행은 개인정보 보호의 의무를 지고 있다. 금융상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기 전에 보안성 심의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인데, 블록체인의 경우 보안과 관련한 규제나 원칙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금융위는 은행들이 블록체인 보안성 심의를 자체적으로 실시하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전례가 충분치 않아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정보 유출에 민감한 은행이 블록체인 도입을 망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은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클라우드 웹을 이용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럽다"며 "새로운 것에 보수적인 관행이 있어서 당국이 원칙이나 규제를 확실하게 제시하지 않으면 블록체인 적용은 더욱더 늦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는 오는 24일 '블록체인 협의회' 1차 회의를 열고 금융권 공동 블록체인 컨소시엄에 관한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앞서 금융위는 미래 금융의 핵심 인프라로 떠오르는 블록체인 연구를 위해 연내에 금융권 공동 컨소시엄을 출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