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머리가 아팠다. 시계를 보니 8시 40분. 수업은 9시 시작이다. 밤새 켜놓은 전기장판 위에 극세사 이불은 몸을 더욱 무겁게 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머리가 더 띵하다. 그래도 오늘은 수업을 가야했다. 교수가 15주 만에 처음으로 강의를 한다고 했다. 그동안 수업은 강의 없이 학생들 조별 발표로 꽉꽉 채웠었다. 일어나자. 모자를 쓰고 가방을 챙겨 나와 뛰었다.
뛰었더니 정신이 좀 들었다. 9시 6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교수는 출석 부를 기미가 안 보였다. 강의실은 어수선했다. 포털사이트에는 ‘운명의 날’ 이라며 각종 기사가 올라왔다. 9시 15분. 교수가 드디어 출석을 불렀다. 괜히 뛰었다.
“오늘 표결이 3시 부터라죠? 아침부터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오늘은 조별로 토론 및 발표를…”
또 강의를 하지 않는다. 이정도면 강의 능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학생들한테 왜 수업권한을 넘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15주 동안 30분 넘게 강의 한 적이 없는데, 이정도면 ‘수업농단’ 이라고 불러도 되려나. 등록금이 아깝다.
수업이 끝나자 관자놀이 부근이 묵직한게 어지러웠다. 시험기간이라고 이것저것 집어넣어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시 집으로 갔다. 약을 먹고 좀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까. 빈속에 약을 먹어도 되려나. 지금 잠들면 아르바이트 늦지는 않으려나. 시험범위 프린트 해야 하는데.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자 머리가 웅웅거리며 진앙지가 된 것 같았다. 됐다 잠이나 자야겠다.
16시 12분. 핸드폰 진동에 잠에서 깼다. 카카오톡에 알림이 쌓여있었다.
[오후 4시 12분] : “탄핵 가결!”
[오후 4시 12분] : “만만세! 직무정지! 큰 정의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다니”
[오후 4시 12분] : “여러분 지금 탄핵의결 됐네여. 도서관인데 사람들 다 소리지름ㅋㅋㅋ”
[오후 4시 13분] : “장 지지는거 보고 싶다. 내일 집회에 뜨거운거로 준비해 가야 겠네요”
[오후 4시 14분] : “반대 56은 누굴까요ㅠㅠ”
…
제발 좀 사라졌으면, 고집부리지 않았으면 했던 두통이 사라졌다. 개운했다. 아르바이트 갈 시간이 되어 밖으로 나갔다. 학교에는 ‘12월 3일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이라고 적혀있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문과대학에는 교수일동과 학생회가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학교를 지나 아르바이트 하는 카페에 갔더니 오늘은 내가 일 하는 날이 아니었다. 스케줄을 착각하다니, 머리가 아프긴 아팠나보다. 카운터 대신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켜서 실시간 뉴스를 틀었다.
“총 투표수 299표 중 가 234표, 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세 번 두드렸다. 두 달 만에 첫 단추가 채워졌다. 역사에 기록될 ‘오늘’이다.
사진/국회방송 캡쳐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