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기자] 현행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 개편을 골자로 하는 개헌 주장이 정치권에서 지속 제기되고 있지만 실현 여부는 미지수로 보인다. 정치인 개개인의 의견이 다른 것은 물론 국민들도 개헌의 시급성 여부에 의문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20일 “20대 국회에서 개헌을 이루지 못한다면 기회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헌법에 근본적인 손질을 가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표는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내 개헌추진 모임 ‘국가변혁을 위한 개헌추진위원회의’에 참석해 “현행 헌법이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 합당한 헌법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 김 전 대표는 개헌 논의가 단순한 권력구조 변경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사법부 독립·경제운용 방식 변화문제 등과 연동해 진행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같은 당 김부겸 의원도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분권형 개헌 추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대한민국은 지금 대통령과 중앙정부에 대한 과도한 권한·권력집중 폐해로 멍들어 있다”며 “여기에 재벌 집단이 상호 유착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우선하는 국가운영으로 각종 폐해를 낳았다”는 말로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와는 별개로 가능성 여부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국민들의 관심이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후 헌법재판소 인용여부에 쏠린 상황에서 개헌동력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리서치가 <중앙일보> 의뢰로 지난 19일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1.1%가 개헌에 찬성한다면서도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천천히 개정하는 것이 좋다’(64.4%)는 답이 내년 상반기에는 해야 한다(33.5%)는 의견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람직한 권력구조 개편방안을 묻는 질문에도 대통령 4년 중임제(38.5%)와 권력분산형 대통령제(33.9%), 내각제(13.0%) 등으로 엇갈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1987년 개헌 당시에는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뽑아야 한다는 인식에 전 국민적인 공감대가 있었다”며 “대통령 직접 선출 여부 하나만 놓고도 주장들이 엇갈리고 지방분권 등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면 개헌논의는 쉽게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내 전반적인 개헌 논의도 본격화되지는 않은 상태다. 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당 내에서 개헌 논의가 가시화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별다른 것은 없다. 아직 개헌특위 위원들도 선임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답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신설에 합의했지만 개헌특위 본격 운영이 내년 1월부터 이뤄진다 하더라도 차기 대선 내에 개헌이 가능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을 하자고 하는 요구는 강하다고 본다”면서도 “새로운 헌법에 의거해 대통령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번에는 물리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력 대선주자인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도 ‘지금은 개헌을 말할 때가 아니다’며 선을 긋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그간 정치권에서 개헌 문제를 정국돌파용 카드로 남발하며 자초한 측면이 크다. 박 대통령도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지난 10월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에 헌법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 내에 관련 조직을 설치하고 실무준비를 해나가겠다”고 밝혔지만 곧바로 '국면전환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개헌 이야기를 꺼내면 항상 찬성·반대 의견이 뒤따른다”고 지적하며 “정치인들도 개헌 문제를 권력이나 나눠먹는 식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누리당 ‘국가변혁을 위한 개헌추진위원회의’ 소속 의원·원외위원장들이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뒷줄 가운데) 초청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