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삼성이 새해 벽두부터 살얼음판에 놓였다. 특검의 칼끝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정조준하면서 '설마' 하던 기대감도 사라졌다. 특검은 이르면 이번주 그룹 수뇌부를 줄소환하고, 최종적으로 이 부회장까지 불러낸다는 방침이다. 혐의는 뇌물죄로, 대가성 입증도 자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 내에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기소 가능성도 큰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인사 등 경영 차질을 보이고 있는 삼성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눈앞에 펼쳐지게 됐다.
새해부터 본격 변론에 들어가는 탄핵심판과 맞물려 특검이 박 대통령의 뇌물죄 의혹 수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관여한 혐의를 집중 수사 중이다. 삼성전자가 최순실씨 모녀 등을 지원한 것과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그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삼성 경영진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했다. 조만간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 등이 소환될 예정이다. 앞서 특검은 출범 이전 장 차장과 박 사장을 비공개로 불러 관련 내용을 한 차례 조사했다. 이 부회장의 소환도 임박한 것으로 관측된다.
특검의 압박에 삼성은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다. 삼성 관계자는 2일 “특검 소환조사 대상에 누가 올랐다는 등의 얘기가 돌면서 피 말리는 심정”이라며 “사실상 특검 대응 외엔 아무 일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사 결정이 나야지 새해 마음가짐도 새로울 텐데 거처가 불분명하니 임직원들의 스트레스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은 인사와 조직개편을 비롯해 미래전략실 해체, 삼성전자 인적분할 등의 계획을 모두 특검 수사 다음으로 미루고 있다.
이 부회장의 활동반경도 급격히 경색됐다. 지난해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올라 본격적인 경영행보가 예상됐지만 출국금지로 CES 참석이 불발됐고 연초 시무식에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그룹 차원의 시무식은 없었지만 지난해 이 부회장은 일부 계열사를 돌며 경영 현황을 챙겼었다. 올해는 이마저도 계획에 없다. 다보스포럼에도 불참하는 등 되레 대외 일정이 백지화된 상태다.
특검의 수사 진도는 이미 삼성의 턱밑까지 도달했다. 특검은 문형표 전 복지부장관으로부터 “국민연금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을 지시했고 이를 청와대와 논의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또 지난해 7월25일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독대 당시 안종범 수석의 수첩에 최씨 모녀의 독일 승마 훈련 지원 관련 내용이 적힌 것을 확인했다. 특검은 지난달 문 전 장관을 구속했으며 안 전 수석과 함께 이날 다시 소환해 조사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서 국민연금의 찬성 의결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규명하는 게 핵심이다.
특검은 삼성의 최씨 모녀 지원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직접 개입했다는 관련자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독대 직후 미래전략실 회의를 열어 관련 문제를 논의한 정황을 포착했다. 한편으로는 이 부회장이 관련 내용을 모르고 있다가 독대 자리에서 박 대통령으로부터 승마 지원이 지연되고 있다는 재촉을 받고 서둘러 회의를 소집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특검은 박 대통령의 공갈 협박 혐의와 함께 삼성이 피해자로 보이기 위해 거짓 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삼성은 최씨가 연관된 미르·K스포츠재단에 총 204억원을 출연했다. 또 최씨가 독일에 세운 독일법인과 22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그중 35억원을 송금했다. 최씨 조카 장시호씨가 운영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2800만원을 후원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승계 문제가 걸린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 의결 이후 최씨 지원까지 이어진 과정에 대가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역량을 집결하고 있다. 혐의는 제3자 뇌물죄이며, 기소 없이 사건을 종결지을 경우 직면할 국민적 비난도 고려 대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전날 박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기자단 신년 인사회를 갖고 제기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박 대통령은 합병에 대한 뇌물죄 의혹이 제기된 것에 대해 “완전히 엮은 것”이라고 항변했다. 삼성 측에서도 “삼성물산 합병은 최씨 지원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다만,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 부회장이 재판을 받게 될 것을 각오하는 분위기가 내부에서도 감지된다. 한 고위 관계자는 "기소까지는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