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기자] 활황을 이어오던 수도권 분양시장도 11.3 부동산 대책 이후 크게 위축되며 미계약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실수요자들은 해당 단지에 대한 정확한 계약 정보를 얻을 길이 없다. 이에 따라 중요한 매매 결정에 있어서 허수가 존재하는 초기 청약 경쟁률과 분양대행업자의 입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초기 분양률 공개 범위 확대안에 대한 내부 검토를 벌였지만 현 공개 수준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분양시장이 당분간 침체 분위기를 이어 갈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중장기적 관점에서 정보 공개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1.3 부동산 대책 이후 지방은 물론, 수도권 브랜드 아파트마저 미분양·미계약 물량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관련 정보는 수요자들에게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을 통해 사업주체가 입주자로 선정된 사람 중 당첨이 취소되거나, 공급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계약을 해약한 경우(최초로 예비 입주자를 선정하는 경우) 당첨 취소 또는 미계약 물량 등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청약 과정에서 예비 당첨자로 선정되는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으로, 그 외 청약 미당첨자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각 건설사들이 사업상 대외비를 이유로 미계약 매물에 대한 정보를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에서 청약 이후 미계약이 발생한 한 아파트단지 분양관계자는 "미계약 물량에 대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업계 관행"이라며 "미계약 물량이 발생한 것을 안 수요자들이 문의를 해올 경우 개별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분양 단계에서 미분양이 발생한 단지는 물론, 높은 청약경쟁률을 보였던 지역이나 단지들에서도 수요자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
작년 수도권 일대 청약시장은 주택 경기 활황에 수십대 1부터 수백대 1까지 경쟁률을 보인 지역을 중심으로 1순위 마감 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정작 동이나 층에 만족하지 못한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하면서 초기 분양률은 100%를 채우지 못한 사례도 다수 발생했다.
이후 예비 당첨자만을 대상으로 미계약분에 대한 정보가 제공되면서 예비 당첨자 명단에 들지 못한 청약자들은 계약 의지를 가지고 있어도 해당 물량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청약 당첨에 실패해 다른 아파트 거래를 마친 상태에서 뒤늦게 할인된 가격에 미계약 물량을 계약할 수 있다는 분양업체의 연락을 받는 일도 허다하다.
청약 열기를 보였던 지역조차 최근 미계약 물량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해당 정보가 일반 수요자에게는 공개되지 않아 접근이 어렵다. 최근 미계약 물량이 발생한 래미안 신반포 리오센트 견본 주택을 찾은 관람객들이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삼성물산
상황이 이렇다보니 각 건설사와 분양업체의 정보에 의존하는 게 전부인 수요자들은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청약 가점을 허위 입력해 고의로 부적격당첨 물량을 만든 뒤 발생한 미계약분을 빼돌려 거래하는 떳따방들의 탈법 행위도 제대로 차단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자 국토교통부는 최근까지 초기 분양률 공개 범위 확대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했다. 하지만 결국 현재 분기별, 시·도·구별로 공개하고 있는 수준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청약시 미분양 물량을 세부적으로 공개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건설사별 청약 애로 사항이 있기 때문에 관련 정보의 일반 공개 의무화는 공감대 형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11.3부동산 대책 이후 '묻지마 청약'이 아닌 실수요자 위주로 시장이 재편된 만큼 미계약 물량에 대한 정보 공개가 더욱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정보 공개를 동의하면서도 그 시점과 방법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국가 경제의 건설업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청약 시장에 타격을 줄수 있는 정보 공개 의무화를 섣불리 도입했을 때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미계약 물량의 일반 정보 공개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당장 도입하기에는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며 "시장 타격과 거부감을 최대한 완화할 수 있도록 도입 시기와 방법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