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걷던 안희정, 이제 '검증' 가시밭길 시작

관훈토론회서 민주당 후보 정체성…좌파운동권 경력·불법대선자금사건 집중 추궁 당해

입력 : 2017-02-22 오후 6:23:47
[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벚꽃잎이 깔린 길을 사뿐이 걸어오다가 불현듯 가시밭길을 만난 느낌이다. 각오했던 일이지만, 막상 닥치니 긴장감이 엄습해온다."
 
이른바 '선의' 발언으로 십자포화를 맞은 안희정 충남지사 캠프의 한 인사가 털어놓은 소감이다. 안희정 지사에 대한 경쟁자와 언론의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됐다. 그동안은 3~4% 지지율의 군소후보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20%대에 안착해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론을 깨고 '양강구도'를 형성한 유력 후보다. 3자 가상대결에서 문 전 대표보다 본선 경쟁력이 우월하다는 조사결과까지 나오고 있다.
 
안 지사가 지난 21일 <뉴스토마토>가 주최한 '4차산업혁명과 청년의 미래' 컨퍼런스에 축사차 참석했을 때는 무려 100여명의 취재진이 따라붙었다. 이제 혹독한 검증을 피해갈 수 없는 국면에 와 있는 것이다.
 
안 지사에 대한 검증 포인트는 현재 세 가지로 압축된다.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 후보로써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점과, 과거 한때나마 주체사상을 추종했다는 사실, 그리고 삼성 등 기업들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사실 등이다.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에서도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한 매서운 추궁이 이뤄졌다.
  
정체성 논란…“당 30년 지킨 천연기념물”
 
안 지사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소위 ‘대연정론’과,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선의’를 인정해야 한다는 ‘선의 발언’으로 야권후보로서의 정체성을 의심받고 있다.
 
안 지사는 “개혁 과제에 동의한다면 의회 다수파를 위해 누구나와 연정해야 한다”면서 “당 강령만 보면 자유한국당도 민주당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당일 때 주장한 정책을 야당이 되면 반대하는데, 실제 우리가 정말 뛰어넘지 못할 정도의 차이 나는 정책은 그리 많지 않다”고도 했다.
 
‘선의 발언’에 대해서는 “국정농단을 한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극단적인 예를 들어 많은 분들이 가슴 아파해 위로 말씀을 드렸다”면서도 “충남도지사 7년과 참여정부 5년 내내 원색적인 비난 앞에 섰는데, 우선 상대방의 진심을 인정해야 대화가 됐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며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소신임을 분명히 했다.
 
자신의 협치와 화합 발언이 중도·보수 표를 노리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정치인 안희정의 계산법은 하늘로부터 받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며 “역사와 시대와 함께 소통한 결과로, 마음에 비친 소리와 진실이 명령하는 바대로 걸어가고 있다”며 진실성을 강조했다.
 
당내 경쟁이 어려워질 경우 탈당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 이에 대해 안 지사는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제가 탈당한다는 것은 일종의 천연기념물이 없어지는 것”이라며 “탈당은 제 사전에 있을 수 없다”면서 30년 민주당원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좌빨 운동권? 직업정치인 안희정은 다르다”
 
안 지사는 진보진영에서 ‘우클릭’ 논란에 휩싸여 있지만 보수진영에서는 이른바 '좌빨'의 ‘중도·보수 코스프레’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안 지사는 고등학교를 두 번 자퇴하며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1988년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체포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0개월 수감생활을 한 열성 운동권 출신이다.
 
안 지사는 이에 대해 “30여년전 청년시절 일이 아직도 현실정치인 안희정을 규정할거라고 생각하나”라며 “지나친 이념공격이다. 저는 충남 재향군인회나 지역 보수진영 단체 분들이 제품 보증을 하는 후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패널들의 사상 검증은 집요하게 이어졌고, 확실한 전향을 선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안 지사는 “청년시절 저는 민족주의자였다. 민족통일에 어떤 헌신을 위해, 북한체제 이해를 위해 북한의 출판물을 읽었고 그 과정에서 잡혀갔다”면서 “김일성 주체사상은 물론, 모택동, 막시즘, 카스트로, 트로츠키를 읽기도 했다. 그 모든 이론에 일일이 전향서를 써줘야 하냐”고 반론했다.
 
그는 “저는 전두환 독재정권과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공부했다. 그러나 그 혁명의 시대, 사회주의 이념시대는 끝나지 않았나”면서 “저는 대한민국 헌법 질서 내에서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해 30년간 노력했다. 헌법과 자유주의 시장경제 수호를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이라고 강변했다.
 
기업 뒷돈 받고 대통령 해도되나…“두번의 선거로 평가받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산 것도 안 지사의 커다란 약점이다. 한 패널은 “정치자금으로 실형을 산 정치인이 대선후보였던 적이 있었나”라고 꼬집었다. '노무현의 왼팔'로 불렸던 안 지사는 지난 2002년 노무현 대선캠프의 살림을 책임졌고, 대선이 끝난 직후인 2003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돼 1년간 복역한 바 있다.
 
안 지사는 “사적으로 이익을 취하지 않았지만, 저의 잘못”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다만 “벌은 벌대로 받았고, (참여정부 당시) 공직에 한 번도 안 나갔다”면서 “2010년과 2014년 도지사 선거 때도 그 일이 쟁점이 됐지만, 210만 충남도민들께서 도지사로 만들어 주셨다. 부족한 점도 있지만 당원과 국민들로부터 일정부분 정치적 사면복권을 받은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당시 삼성으로부터 불법대선자금 30억원을 받아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 아니냐는 추궁에는 “개인적 관계로 특별히 뭘 받은 게 아니지 않느냐”며 “사법정의를 지키도록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사법부의 권위를 높이는 것이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다. 특정 재벌의 편을 들려고 한 발언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패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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