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은 여의도 정치권에서 흔히 회자되는 이야기다. 일개(?) 국회의원도 이런데 대한민국 권력의 정점,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은 오죽하겠는가.
승자와 그 주변에 서있는 인물들은 승리의 달콤한 과일을 독점할 수 있지만, 패배한 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뿐더러 정치생명을 담보하기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한때 ‘유력 대권잠룡’으로 주변의 추앙을 받다가 마지막 고비에서 미끄러져 대중의 조롱감으로 전락한 인사들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The winner takes it all)는 법칙이 가장 철저하게 적용되는 게임 판이 바로 대선레이스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9년의 영향인지,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원내 제1당이자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후보경선도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민주당 경선이 곧 본선’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노무현’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의 경쟁구도는 흥미를 더한다.
그러나 최근 두 후보의 경쟁양상을 보면 이게 촛불민심이 고대하는 새정치인가 의심스럽다. 경쟁의 기본이 상대방의 약점은 부각시키고 자신의 강점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서로가 상대의 의도와 진심을 충분히 알면서도 일부러 그것을 외면하고 비틀기와 부풀리기로 국민을 호도하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
얼마 전 안 지사의 ‘선한 의지’ 발언에 범야권이 출렁였다. 문 전 대표의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세운다”는 비판은 야권의 일반적 인식을 대표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 지사가 이를 ‘지도자의 분노는 피바람 부른다’고 받아친 것은 국민들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일종의 흠집내기라는 생각이다.
안 지사의 ‘대연정’ 발언에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도 끌어안자는 것이냐’는 식으로 문 전 대표 측이 공격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당의 협조없이 국정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빈손으로 끝난 지난 2월 국회가 충분히 증명한다. 다음 총선은 3년이나 남았다. 그때까지 어떻게 국정을 이끌어갈 것인가. 마땅한 대안 없이 비난만 하는 것은 안 지사의 정체성을 공격해 이득을 보려는 꼼수다.
최근 민주당 경선을 보면서 정확히 10년 전인 지난 2007년 한나라당(현 한국당) 경선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당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는 치열하게 맞붙었고, 두 사람은 차례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남은 것은 ‘친이’, ‘친박’으로 당을 두 개로 쪼갠 계파갈등과 공천학살이었다.
경선은 사활을 건 싸움이니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도 국민의 열망을 담지하고 있는 1, 2위 후보라면 정책과 철학으로 정도를 지키며 경쟁해야 한다. 말꼬리 잡기로 상대방 흠집내기에만 몰두하는 '진흙탕 싸움'은 또다시 국민을 실망시키고 정치혐오에 빠트리는 일이다. '정치를 바꾸라'는 것도 촛불민심의 준엄한 명령이다.
이성휘 정경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