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기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공판에서 검찰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측이 문화예술인의 성향 분석에 따른 정책의 정당성을 두고 정면으로 격돌했다. 검찰은 인권침해라고 주장한 반면, 김 전 실장 측은 특검이 억지 편가르기로 무리하게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김 전 실장 측 변호인은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황병헌) 심리로 열린 김 전 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에 대한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사가 주장하는 사실관계가 모두 인정되더라도 범죄가 되지 않는다”며 “특검은 종전에 범죄가 되지 않던 동종의 사실관계를 두고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의견을 모아 피고인을 범죄자로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특검이 정파적 편가르기를 했다며 “특검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하고 독립해 직무를 수행한다는 특검법 5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해 구체적인 지시를 한 바 없고, 대통령 통치철학에 부합토록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균형 있는 문화예술정책을 강조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실장의 또 다른 변호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김 전 실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모했는지 공소장에 특정되지 않았다”며 “특검 권한은 (특검범에 따라) 최씨와 관련해 국회가 기소권한을 준 것이다. 공모관계가 특정되지 않으면 특검의 기소권한에 포함되지 않아 공소기각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검찰 측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좌우 이념은 명목에 불과하고 정파적 편가르기에 불과해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며 “제왕적 대통령제가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구실이 될 수 없다. 이념에 다른 정책집행과 전혀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자유민주적 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편가르기 지시가 있었는지, 사전 검열이 있었는지, 작품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있었는지, 사람에 대해 연좌제가 적용됐는지, 따르지 않으면 어떤 보복 조치가 있었는지 등이 쟁점이 돼야한다”고 지목했다. “판례를 따를 때 공소사실은 특정돼 있다. (김기춘 측) 변호인 주장은 재판을 지연하기 위한 주장에 불과하다”고도 말했다.
파견검사의 공소유지를 놓고서도 검찰과 양측의 공방이 오갔다. 김 전 실장의 변호인은 “기소권한은 특별검사에 있다. 특검보(특별검사보)보다 우월한 지위는 안 된다”며 “파견검사가 특검보 권한 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파견검사가 공소유지에서 빠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법정에 나온 이용복 특검보는 “특검법에 따라 공소유지에 필요할 때 파견검사를 받아 공소유지하게 할 수 있다”고 직접 반박했다. 재판부는 특검법 등 해석상 파견검사가 공판에 관여할 수 있다고 해석해 특검팀 손을 들어줬다.
김 전 실장 등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이 정부와 견해를 달리하는 문화예술인과 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공판준비기일에는 불구속 기소된 김 전 수석과 김 전 비서관만 출석했다. 구속기소된 조 전 장관과 김 전 실장은 나오지 않았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다. 다음 재판은 3월21일 오전 11시에 열린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등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달 4일 오후 서울 대치동에 있는 특검으로 소환됐다. 사진/뉴시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