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협회, 허수영 연임 '악수'

회원사들 고사에 피고인이 협회장…산적한 업계 현안 제목소리 어려워

입력 : 2017-03-16 오후 1:00:43
[뉴스토마토 조승희기자] "전부 협회장을 안 하겠다고 하니까…어제까지도 결정이 안 되서 (공석으로 둘 수 없어)할 수 없이 제가 하게 됐습니다."
 
한국석유화학협회 정기총회가 끝난 직후 허수영 협회장(롯데그룹 화학무문장·사진)은 덤덤하게 본인의 연임 소식을 알렸다. 허 회장의 임기가 지난 2월 만료됐지만, 다른 CEO들이 경영활동 전념을 이유로 차기 회장 자리를 고사하면서 연임의 짐을 짊어졌다는 설명이다. 협회는 가까스로 수장 공백 사태를 피하게 됐다.
 
한국석유화학협회는 16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제43기 정기총회를 열고 허수영 현 회장을 제19대 회장으로 선임했다. 회장 임기는 2년이다. 지난해 말부터 차기 회장 선출을 논의해 온 협회는 기존의 '추대' 방식에서 LG화학(051910), 한화케미칼(009830), SK종합화학, 롯데케미칼(011170), 대림산업(000210) 등 5개 회원사가 '순번제'로 회장을 맡기로 합의했지만, CEO들이 모두 손을 저으면서 총회 당일까지도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허 회장의 연임안이 긴급 발의되면서 추대가 이뤄졌고, 참석자 만장일치로 동의가 이뤄졌다. 허 회장은 전날 임승윤 상근부회장의 직무대행 체제로 갈 수 밖에 없다는 보고를 받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는 후문이다.
 
회원사들의 책임 회피가 협회를 또 다른 위기로 내몰았다는 지적도 있다. 허 회장은 롯데그룹 비리 수사로 불구속 기소돼 매달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 사법처리 대상이다. 조세포탈 및 배임, 제3자 뇌물 교부, 비자금 조성 등 혐의만 5개에 이른다. 실적 개선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 인사에서 화학부문(BU)장으로 승진했지만, 부회장 직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도 향후 재판에 대한 부담 때문이란 게 롯데그룹 안팎의 해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화학물질의등록및평가등에관한법률과 화학물질관리법,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 등 산적한 업계 현안을 놓고 정부에 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워 보인다.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통상 압박도 풀어야 할 숙제다.
 
일시적 공백을 피하기 위해 허 회장을 다시 선택했지만 악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근본적 이유다. 한편으로는 허 회장 역시 법정에서 유·무죄를 가려야 하는 피고인 신분인 만큼 업계를 대표하는 협회장 직에서 물러났어야 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편 허 회장은 이날 연임 결정 직후 "미국 트럼프 신정부의 변화에 대응하고, 우리나라 새 정권과도 협의를 이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특히 최근 중국의 무역 압박도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공유하고 공동 대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본인의 임기 동안 '회장 순번제'를 정착시켜 매번 반복되는 차기 회장 구인난을 방지하기로 했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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