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기자] 기술 유출을 우려한 일본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도시바 살리기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면서 도시바 반도체 사업 인수전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국책은행인 일본정책투자은행은 도시바가 매물로 내놓은 '도시바메모리'에 일부 지분을 출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방식은 정부 주도의 민관합작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가 인수 후보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형태로 진행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도시바메모리 지분 34% 이상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의결권 34%를 보유하면 회사 경영의 주요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 경쟁국으로의 기술 유출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니혼게이자는 "도시바메모리의 매각 금액인 약 2조엔 중 절반을 금융권 차입으로 해결한다면 3000억엔 정도로 지분 30%대 후반을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를 움직인 것은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여론이었다. 일본 재계단체인 게이단롄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은 지난달 "반도체는 일본에 매우 중요한 산업"이라며 "기술과 인력의 해외 유출은 국가 안보와 국익 측면에서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시바의 쓰나카와 사토시 사장도 지난 14일 "반도체 기술은 국가 안보와 관련이 있어 이를 염두에 두고 인수자를 선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지난 2012년에도 미국 사모펀드 KKR이 일본 반도체기업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의 지분을 인수하려고 하자 산업혁신기구가 나서 이를 막은 바 있다.
특히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도시바는 2006년 인수한 미국 원전회사 웨스팅하우스에서 대규모 손실을 거듭하자, 매각 또는 파산보호 신청 후 해외 원전사업에서 철수할 계획이다. 현재 미국 정부는 웨스팅하우스의 원전사업에 83억달러에 달하는 채무보증을 서고 있어, 원전사업이 중단되면 미국 경제의 타격은 피할 수 없다. 때문에 일본 정부는 원전을 둘러싼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미국계 펀드나 기업들과 연대해 도시바메모리 인수전에 뛰어드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업계에서는 일본 정부가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 대상자로 미국 기업을 선호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도시바가 반도체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을 우려해 중국계는 제외했다고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김장열 골든브릿지투자증권 연구원은 "도시바 매각과 관련해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일본 정부가 참여하면 일본 국익을 저해하는 잠재적 인수자를 사전에 걸러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이유에서 중국계 기업이나 펀드는 입찰 가격을 불문하고 고려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과 일본 정부가 손잡는 인수전은 한국의 SK하이닉스에 그다지 나쁜 시나리오는 아니다"고 말했다.
쓰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이 지난 14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