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대선은 시골마을 음악콩쿠르가 아니다

입력 : 2017-03-28 오전 6:00:00
전 세계적으로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휘청거리고 있다. 정치권이 전례 없이 부패했고 정치인들의 부정직함이 정도를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정치인 불신은 결국 정치혐오와 정치냉소로 이어진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 전 대통령의 무능과 부정직함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한국인들의 정치 불신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공범인 자유한국당도 지리멸렬할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프랑스 정치권의 부패와 정치인의 부정직함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공화당의 대선 후보 프랑수아 피옹은 공금횡령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지지율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했고, 그 반사 이익을 얻은 전진의 엠마뉘엘 마크롱도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부 장관을 지내면서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프랑스 젊은층(18~34세)의 90%는 그들의 정치인이 부패했다고 개탄한다. 이에 따라 이번 프랑스 대선은 정직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고 있다.
 
철학에서 정직성은 덕의 자질로 정의한다. 정직성은 선(올바른 것)의 개념에 가까운 하나의 도덕적 가치다. 이러한 정직성이 프랑스 대선에서 유권자의 표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 오는 4월23일 치러지는 대선 1차 투표에서 승부수를 겨룰 다섯 명의 후보에 대한 자질을 묻는 여론조사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지난 25일 프랑스의 여론조사기관 배베아(BVA)가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전진의 마크롱은 26%를 얻어 FN의 르 펜(25%)을 급기야 앞지르게 되었다. 공화당의 피옹 후보(17%)도 크게 따돌리는 중이다. '불응하는 프랑스(France insoumise)'라는 시민운동의 장 뤼크 멜랑숑 후보가 14%,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후보가 11.5%를 얻어 그 뒤를 뒤따르고 있다.
 
마크롱이 대선의 유력 주자로 자리를 굳혀 가는 이유는 뭘까. 마크롱은 호감도(58%), 대통령의 소질(45%), 신뢰도(41%),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방어해줄 수 있는 사람(39%), 내 근심 걱정에 부합하는 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인물(39%) 등의 측면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단 정직성(48%) 면에서는 3위에 머물렀다. 단지 정직성 하나 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불응하는 프랑스'의 멜랑숑 후보가 61%로 단연 우세했고, 그 다음이 사회당의 아몽 후보로 57%를 얻었다. 정직성의 챔피언인 멜랑숑은 호감도 면에서 53%를 얻어 2위를 차지했고 신뢰도(41%)와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방어해주고(38%), 내 근심 걱정에 부합하는 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인물(38%)이라는 측면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대선 지지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르 펜의 경우는 호감도, 대통령의 소질, 신뢰도 등에서 모두 저조했고 정직성에서 만은 23%를 얻어 최하위인 공화당의 피옹 후보(9%) 보다 높았다.
 
이처럼 덕행 면에서 본다면 멜랑숑 후보가 챔피언임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인 61%가 멜랑숑은 정직하다고 보고 있어 이는 그의 지지율 상승으로 직결되고 있다. 멜랑숑은 정치 책임자들의 스캔들을 평가하는 공화국의 도덕성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정치권의 쇄신을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 역사에서 기억되는 청렴가 로베스피에르의 지칠 줄 모르는 수호자인 멜랑숑은 지난 주 ‘선으로부터(De la vertu)’라는 책을 세실 아마르(Cecile Amar) 기자와 공저로 출판했다. 그는 “선은 가장 나쁜 부정부패에 직접적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정치를 불신할 때 선은 공공장소에서 뜨거운 의무”라고 주장하며 민주주의를 치명적으로 만드는 제왕적 존재인 돈을 비난하고 있다.
 
비록 프랑스 이번 대선에서 정직성이 결정적 변수로까지 작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멜랑숑 후보는 이를 화두로 삼고 정치권의 부정부패 불식을 큰 이슈로 부각시키며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모으는 중이다.
 
여기서 문득 궁금증 하나가 생긴다. 우리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은 과연 어떤 요인들을 측정한 것일까? 모든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가 선두를 달려 ‘문재인 대세론’이 시중에 파다하지만 유권자들은 문 후보의 어떤 점을 높이 사고 있는 것일까? 문 후보를 비롯한 다른 후보들은 이번 대선의 이슈를 무엇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인가? 적폐청산이나 사회 통합을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쟁점화 시키고 있는가?
 
프랑스 대선에서는 적어도 멜랑숑이라는 후보가 프랑스 정치를 좀 먹는 정치 부패를 도려내기 위해 정직성을 이슈화하고 책을 펴내 반향을 일으키는 중이다. 그러나 5월 장미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 대선의 의미는 차기 대통령 하나를 뽑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쟁점화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가에 있다.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이번 대선을, 어느 시골 마을 음악콩쿠르처럼 일등 한 명을 가려내는 무대로 전락시키지 않길 바란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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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