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프랑스인이든 한국인이든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의 일상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조금 과장하면 공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중요한 정치이건만 최근 들어 오염되고 혐오감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치 혐오의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의 부패 문제가 가장 크다. 국민의 안위를 챙기기보다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정치인들에 국민들은 분노한다. 이와 같은 현상이 심화되면 국론 분열로까지 이어진다. 이른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고 최순실 만을 위해 군림했던 박 대통령. 국회로부터 탄핵 당하고도 국민 다수의 여론에 귀 기울이기보다 소수 지지자들에게만 메시지를 전하는 박 대통령의 편협한 행동으로 인해 한국사회는 첨예하게 둘로 나뉘어 대립 중이다.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선고가 이르면 이번 주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인용되든 기각되든 우리 사회의 분열 양상은 여간해서 봉합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서도 왕좌를 수호하려는 권력자의 이기심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는 시구가 새삼 귀중하게 여겨지는 순간이다.
프랑스도 최근 정치 혐오·불신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2월 초 불거진 페넬로프 게이트(Penelope gate, 피옹의 공금횡령 혐의) 이후, 공화당 대선 후보 피옹은 검찰의 조사를 받는 중이고 그의 후보 자질을 둘러싸고 국론 분열은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피옹은 대선 포기는 결코 있을 수 없고 종착역까지 완주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지난 3일 여론조사기관 오독사(Odoxa)가 조사하고 프랑스 엥포(France Info)가 발표한 여론의 흐름을 보면, 프랑스인 70%는 피옹이 대선주자로 머무는 것을 잘못된 일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스캔들이 발생한 한 달 전에 비해 9%p 상승한 수치다. 이렇게 자신을 원치 않는 유권자들이 갈수록 증가함에도 피옹은 선거를 통해 프랑스인들의 평가를 받겠다고 주장하며 버티고 있다.
또한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피옹 후보를 둘러싸고 우파 유권자들 자체도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우파의 50%는 피옹이 끝까지 완주해 주길 원하는 반면 나머지 절반은 전혀 그렇지 않다. 또한 응답자 64%는 피옹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법적 심판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단지 36% 만이 그가 정치적 이유로 인해 가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중도 우파 지지자 46%는 피옹이 대선 후보를 사퇴하고 알랭 쥐페 보르도시장과 같은 정치인으로 대체돼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여론이 등을 돌리고 있는 마당에, 피옹은 지난 5일 파리 16구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지지자들을 한데 모으기 위한 대형 미팅을 가졌다. 그러나 이 미팅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고 피옹의 캠프마저 점점 분열 양상이 고조되고 있다. 피옹이 아마도 오는 15일 검찰에 소환되어 자신의 부인과 두 자녀를 거짓으로 고용한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게 되면 앞으로 대선 캠페인은 더욱 어려워 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피옹 캠프의 회계관리인과 세 명의 의원은 그를 떠났고, 다른 멤버들도 하나 둘 이탈하기 시작했다. 전 수상인 도미니크 드 빌팽(Dominique de Villepin)은 피옹의 선거전이 이미 구렁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꾸짖고, 전 가족부 차관 나딘 모라노(Nadine Morano)는 피옹의 후보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공화당 의원 조르주 페네슈(Georges Feneche)는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피옹에게 패한 알렝 쥐페를 후원하도록 여론을 환기시키고 있다.
이처럼 모두가 등을 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옹은 사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만 빠져있는 양상이다. 박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정치인의 부패 스캔들에 국민이 염증을 느끼고 등을 돌리면 기사회생은 어렵다. 따라서 지도자의 자질 중 떠날 때를 제대로 아는 미덕도 중요한 덕목이다. 이러한 미덕을 갖추지 못하면 권좌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국론만을 들끓게 한다. 박 대통령과 피옹이 이러한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면 자신의 정치 생명도 유지하고 국론 분열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은 고집스럽게 자기 자리만을 지키려다 모든 것을 잃게 될 판국이다. 두 정치인의 스캔들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지나친 고집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자리에 집착하지 않고 판단을 제대로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최악의 사태는 분명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탄핵 심판 결정을 코앞에 둔 지금 과연 우리 사회는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오염된 한국 정치에 산소를 공급해줄 자는 과연 누구인가. 정치 갈등과 혐오는 과연 중단 될 것인가. 이번 주는 무수한 질문들이 뇌리 속을 스쳐지나가는 분주한 한 주가 될 것 같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