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대통령, 권력욕만으로 넘볼 수 있는 자리 아냐

입력 : 2017-03-14 오전 6:00:00
지난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인용했다. 이정미 재판관을 비롯한 8인은 “대통령 행위의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파면으로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이유를 들어 파면선고를 내렸다. 그간 3개월 넘게 우리 사회를 수렁으로 빠트린 한 사건이 헌재의 통쾌한 심판으로 일단락되었다. 많은 국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대한민국이 국민주권 국가임을 재확인했다. 분명 위대한 국민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감격의 순간에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이유는 왜일까.
 
그것은 그간의 갈등이 절대 여기서 봉합되지 않으리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탄핵인용이 결정되자마자 한국의 리더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제는 국민통합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00% 동감한다. 그러나 이들의 말이 허구나 수사가 아니길 진정으로 바란다. 국민통합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모래성이 아니다. 우리 정치인들이 한데 뜻을 모아 인내를 가지고 합심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 상황에서 분열된 국민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박 전 대통령의 한마디가 필요하다. 국민 앞에 나와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도록 마지막 당부를 해 준다면 분열의 봉합은 좀 더 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불복 메시지만을 남김으로써 국론분열을 재차 조장했다. 최악의 경우에도 리더는 리더로서의 품격을 유지하고 국가를 생각하는 애국심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훈련을 받지 못한 것이 역력하다.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런 우리와 달리 프랑스에는 기품 있는 정치인이 있어 프랑스 정치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그 주인공은 보르도 시장 알랭 쥐페. 지난 2월 불거진 피옹 후보의 공금횡령 혐의로 공화당의 대선 정국이 늪에 빠지고, 피옹의 지지율도 17%까지 하락함으로써 FN의 르 펜(26%)과 '전진‘의 마크롱(25%)에게 크게 뒤지고 있다. 그러자 공화당 선거진영에서는 피옹을 쥐페로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분열 양상을 빚기 시작했다. 몇몇 여론조사마저 쥐페로 대체될 경우 공화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자 이런 양상은 더 한층 커져갔다.
 
이에 쥐페는 재빨리 지난 6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선에 나가지 않을 것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히고,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프랑스인들에게 남겼다. “프랑스 제5공화국 역사상 대선이 이번처럼 혼돈에 빠진 적은 없었다. 지난 5년 간 올랑드의 실정으로 상궤(바른길)를 벗어난 좌파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부러져 있다. 좌파는 대선 1차전에서 아웃될 상황에 처했다. FN의 마린 르 펜은 사법적 분쟁에 휘말려 곤경에 빠져있고, 반유럽주의에 심취해 프랑스를 재앙으로 몰고 가고 있다. 정치기관의 불신을 이용해, 올랑드 경제정책의 주역이자 선동가인 마크롱은 정치적 쇄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의 정치적 미숙과 프로젝트의 빈곤은 언제까지 우리를 속일 수 없다.
 
우리 중도·우파는 이게 무슨 낭비인가! 나는 오픈 프라이머리 다음날 즉각 프랑수아 피옹을 성실히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나는 그에게 이 점을 여러 차례 재확인시켰다. 피옹에 대한 검찰조사의 시작과 정치적 살인 의지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구조(출마)를 요청해 와 심사숙고 해 보았지만 내가 중도·우파를 끌어 모으기에는 너무 늦었고, 프랑스 유권자들이 원하는 근본적인 정치쇄신을 구현하기에는 내 나이 71세로 너무 늦었다. 선출직 의원들이 귀감을 보여야 한다는 유권자의 요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비록 내가 법정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후 ‘개인의 성찰과 노력’으로 사면받았다지만 유권자의 요구에 부합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나는 나의 명예와 가정의 평화를 평판의 파괴자들에게 양도하길 원치 않는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나로서는 너무 늦었다. 그러나 프랑스로서는 분명 너무 늦지 않았다. 프랑스로서는 결코 늦지 않았다.”
 
이렇게 쥐페는 중도·우파의 분열을 막기 위해 재빨리 입장을 표명하고 자신의 조국 프랑스를 위해 현명한 판단을 해 줄 것을 지지자들과 국민에게 호소했다. 진정한 리더라면 국가를 위해 이 정도의 고뇌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온갖 술수를 써서 정치적 기회를 잡으려는 한국의 정치인들과 분명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라는 어마어마한 자리에 과연 자신이 부합하는지 쥐페는 정치적 고난 속에서 끊임없이 번뇌하며 고민한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은 시대와 유권자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을 과감히 포기했다. 책임감도 자질도 없이 권력의 영예만을 쫒아 온 박 전 대통령의 행보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이번 19대 대선에 나서는 후보들은 국가를 위해 거시적 안목에서 경쟁을 벌이고 자질이 없으면 스스로 미련 없이 사퇴하길 바란다. 대통령의 권좌는 권력욕만으로 넘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후보들은 박 전 대통령을 거울삼아 자신이 과연 대통령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잘 성찰해 보고 대선행보를 이어가기 바란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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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