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 500일…아무도 처벌 받지 않았다

수사 의지 안 보이는 ‘검찰’, 비협조로 일관하는 가해자 ‘경찰’

입력 : 2017-03-27 오후 4:28:44
[뉴스토마토 조용훈 기자] 고 백남기 농민이 국가 공권력에 피해를 당하고 쓰러진 지도 벌써 500일이 지났지만 진상규명과 관련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검찰 역시 형사 고발된 경찰 진압책임자 7명 중 누구도 기소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백남기투쟁본부를 비롯한 11개 시민단체 회원들은 27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백남기 농민 사망과 관련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및 재발방지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죽은’사람만 있고, ‘죽인’사람은 없다. ‘죽인’사람을 처벌하라는 요구에도 답이 없다”며 “우리는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 다시는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책임자들이 처벌 될 때까지, 서창석과 백선하 등 의료인으로서 책임을 저버린 ‘정치의사’들이 그 대가를 치를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27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백남기투쟁본부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용훈 기자
 
이날 정현찬 백남기투쟁본부 공동대표는 서울대학교 병원 측에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사망진단서 오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 대표는 “서울대학교 병원은 진단서를 하루빨리 정정해 백 농민이 법적인 사망신고라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그래야 백 농민의 한을 풀어드리고, 편안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였던 백선하 서울대학교 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백씨의 사망원인을 외부 충격을 뜻하는 '외인사'가 아닌 질병으로 인한 '병사'로 기록해 논란이 됐다.
 
무엇보다 백남기투쟁본부는 진상규명과 관련한 경찰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검찰의 지지부진한 수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백남기 농민 변호인단으로 활동 중인 송아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는 “백남기 농민에 대한 사건 발생 이후 검찰에 강신명 등 진압책임자들을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지금까지 아무런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지속적인 면담요청을 하고, 검사와 대화를 할 때마다 ‘수사를 하고 있다’, ‘기다려보라’ 등 형식적인 대답뿐,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송 변호사는 “경찰도 검찰과 다르지 않다”며 “앞서 확보한 CCTV자료를 가지고 국가와 경찰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지만, 재판부가 경찰에 사건발생 원인의 중요한 단서가 될 문서를 제출하라고 수차례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협조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변정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캠페인 팀장 역시 “유엔자유인권위원회 일반논평에서는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기관이 즉각적이고 실효적인 그리고 독립적인 조사를 실시하지 못하면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국가가 인권 침해에 대해 조사하지 않고, 재판에 회부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비판했다.
 
백남기투쟁본부는 ‘광장을 열자, 백남기를 기억하자’라는 이름으로 현행 집시법(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과 경직법(경찰관직무집행법)에 대한 개정 입법청원운동도 예고했다. 주요 내용으로 경찰의 차벽 설치 금지와 국회와 법원, 청와대 앞 100m 집회 금지 관련 내용 삭제, 경찰의 살수차 사용범위 제한, 신체 향한 직사살수 금지 등 물대포 추방을 위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백남기 농민을 우리가 기억하는 방법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경찰의 무자비한 국가폭력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개혁이다"라고 말했다. 향후 백남기투쟁본부는 시민들과 함께 입법청원운동을 전개하고, 그 결과를 국회와 대선후보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아울러 백남기투쟁본부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현재 춘천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사면을 촉구했다. 김욱동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백남기 어르신에게 살인적인 물대포를 가한 책임자 처벌과 세월호 진실규명 그리고 한상균 위원장의 즉각 석방이야말로 이 땅의 적폐를 청산해 나가는 첫걸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 백남기 농민의 장녀 백도라지씨는 “벌써 500일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일이 없다는 사실에 기가막힌다”며 “강신명 전 경찰청장 이하 국가폭력 책임자를 처벌하고,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살인무기 물대포를 추방하는 일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국정농단의 한 축이기까지 했던 서울대 병원에도 응당한 처벌이 내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도라지씨는 기자회견 후 앞으로 한 달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진행되는 1인 시위의 첫 번째 시위자로 나섰다. 
 
한편, 경찰은 지난 2015년 11월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1차 민중총궐기 당시 백남기 농민을 향해 고압의 물대포를 직사로 살수했고, 머리에 큰 부상을 입은 백남기 농민은 이후 병상에 누워 단 한 차례도 깨어나지 못한 채 지난해 9월25일 세상을 떠났다.
 
고 백남기 농민의 장녀 백도라지 씨가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국가폭력 책임자 수사를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조용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