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프로야구가 개막됐다. 프로야구가 인기를 끌면서 어떤 구단은 FA 시장에 큰 돈을 투자해 국내 FA 단일 계약 총액이 150억원을 돌파한 사례가 나왔다. 또 어떤 구단은 뛰어난 외국인 선수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편 어떤 구단은 선수들에게 적은 연봉을 지출하면서도 좋은 성적을 받기도 한다. 왜 어떤 구단은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도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잘 알려진 영화 '머니볼'은 지난 2002년 미국 프로야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Oakland Athletics)의 단장 빌리 빈의 이야기이다. 빌리 빈은 통계를 이용해 선수들을 평가하고 구단을 운영했다. 기존의 선수 평가 방식은 오랜 경험을 가진 야구 전문가 코치들의 의견을 모아 의사결정을 했다면, 통계를 이용한 새로운 방식은 경제학 전공자의 데이터 분석을 기초로 저평가된 선수를 저렴한 비용에 영입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오클랜드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성적을 이뤄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실제로 이런 새로운 구단 운영 방식이 좋은 결과를 보이자 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 Sox)는 오클랜드의 데이터 분석 전문가를 영입한 후 불과 2년 만인 2004년, 밤비노의 저주를 극복하고 86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룬다. 오클랜드와 보스턴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머니볼은 메이저 리그의 게임의 법칙을 바꿔놓았다. 돈이 지배하던 시장에서 저평가된 가치를 찾아내 보다 적은 비용으로 승리를 얻어내는 새로운 원칙이 만들어진 것이다.
처음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데이터 기반의 분석이 이뤄졌을 때, 베테랑 프로야구 선수들은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야구를 전혀 알지 못하는 풋내기들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평생을 바쳐 야구를 한 사람들에게 데이터가 무슨 의미인가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변화가 여러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불과 1년 전 평생을 바둑에 전념한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 '알파고'를 상대로 다섯 번의 대국에서 한차례 승리를 거뒀지만 나머지는 모두 지고 말았다. 또 온라인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 넷플릭스는 시청자 데이터 분석에 기초한 앞선 서비스 제공을 통해 방송 산업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3000만명 이상의 시청자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빅데이터(Big data) 분석을 할 수 있었다. 이 분석을 기초로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좋은 배우 케빈 스페이시와 감독 데이비드 핀처, BBC 원작 드라마를 이용해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별 제작에 1000억 원 투자하고 대박을 이뤘다. 넷플릭스는 어떤 시청자들이 '몰아보기'나 '다시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머니볼'에서 인상적인 내용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은 신념과 편견으로 움직인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제거하고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한다면 명확한 이점이 있다." 어떤 분야에서 경험을 쌓을수록 사람들은 더욱 강한 신념과 편견을 갖게 되고 이야말로 승리를 놓치는 약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특정 분야의 콘텐츠 사업 관점에서는 앞으로 더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첫째, 기존의 의사결정 방식이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으로 바뀌는 것이 문화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과 '감'으로 의사결정 하던 경영진이 데이터에 기초해 결정하는 변화를 조직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둘째, 구글이나 애플 같은 플랫폼들이 고객 정보를 독점하면서 해당 분야의 회사에게는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하기에 데이터 기반 사업 추진이 어렵다.
한편 플랫폼 사업 측면에서는 고객 기반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엄밀한 분석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돼, 해당 내용의 사업을 인수하며 수직적 통합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 포털 회사들이 콘텐츠 업체들을 인수하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 콘텐츠 회사들은 고객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독자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점에서 경험과 '감'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하는 이 시대에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야 할 때이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대학 글로벌경영학트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