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옇다. 허공도 뿌옇고, 봄 하늘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야도 뿌옇다. 흐드러지게 피고 있는 개나리의 품에도 진달래의 품에도 미세먼지가 파고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봄꽃들의 안위마저 걱정된다. 세상을 향한 꽃들의 향기는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노심초사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왜냐하면 저 미세먼지들의 습격이 일시적으로 끝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내, 중국 발 미세먼지는 서울의 2017년 1월 2월 3월, 석 달간의 미세먼지 ‘나쁨’ 일수를 14일이나 채웠다. 최근 3년 중에서 올해가 서울의 공기가 가장 나빴다는 뜻이다.
2015년(5일)과 2016년(2일) 대비 9∼12일이나 증가했다고 한다. 미세먼지가 서울의 불건강한 통계 하나를 만들어 내는 주범으로 등장한 셈이다. 4월 들어서도 활기를 치고 있는 미세먼지의 진로는 여전히 한반도로 향하고 있어, 그 기세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도 않다.
여기에 한반도에 배치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인해 야기된 한국에 대한 중국의 보복도 그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행 관광 상품 판매금지와 롯데그룹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시작으로 한반도에 불안한 공기를 잔뜩 불어넣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는 한국의 삼성, 현대자동차 등 제조업체로까지 그 보복이 확대되고 있다는 기사가 미세먼지만큼이나 우리의 가슴속으로 아프게 파고들고 있다.
물론 한한령(限韓令, 한류 제한령)과 금한령(禁韓令, 한류 금지령)같은 조치도 구체적으로 한류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양국의 문화행사나 학술행사 등이 취소되는 시련을 겪고 있다. 20년 이상이나 지속되어 온 한류가 적지 않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경고음이 요란하다.
여기에 더하여 한일 관계도 순탄치 않다. 일본 정부가 부산 소녀상 설치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지난 1월 9일 본국으로 소환했던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4월 4일, 85일 만에 한국으로 귀임시켰으나 향후 위안부 문제와 소녀상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만 같다. 이처럼 한·중·일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공기는 미세먼지처럼 잿빛으로 얼룩져 있다.
그렇다고 국내로 눈을 돌려봐도 그리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헌법재판소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대통령 탄핵이 결정된 이후, 서울의 한복판인 광화문과 시청에는 ‘촛불’과 ‘태극기’로 양분된 민심들이 칡과 등나무가 서로 복잡하게 얽힌 것처럼 여전히 매듭을 풀지 못하는 양상이다. 국내외적으로 산적해 있는 국가의 현안들과 미세먼지가 혼재해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세를 방불케 한다. 그런 시각은 단지 필자 한 사람만의 편견은 아니리라.
아, 2017년 서울의 봄은 분명 인고의 계절이다. 수상한 계절이다. 그 어느 해 보다 2017년 봄은 봄이로되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계절이다.
어찌하랴. 이런 계절을 극복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 아닌가.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국 정부와 국회가 미세먼지 피해로 인한 대책과 보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더불어 사드 보복으로 인한 막대한 손실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한류의 피해를 감당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무엇이며, 그 실행방법을 명시하여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과연 이러한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서 정부와 국회는 중국에 강력한 항의를 해보기나 했는지,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하고는 있는지 그 책임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미중(美中) 정상회담에서 어떻게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주겠지 하는 소극적 자세만을 견지하고 있다는 인상만 강하게 전해질 뿐이다. 우리 국민들의 속이 자꾸만 타들어간다.
아직도 우리의 국력이 약하다는 탓만 하기에는 2017년 서울의 봄은 잔인하다. 이럴 때일수록 내부 분열이 가장 뼈아픈 후회를 가져온다는 역사적 교훈 앞에 경건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반만년에 가까운 유구한 역사 속에서 난세일수록 오히려 모두가 힘을 합쳐 어려움을 극복해냈던 자랑스러운 민족이다. 그것을 상기했으면 좋겠다. 야속하게도 우리들의 아까운 시간은 자꾸만 흘러간다. 그래, 저 봄꽃들이 지기 전에 우리도 무언가 제대로 된 꽃 하나를 피워 놓자. 그것이 2017년 서울의 봄을 가장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되리라.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일본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