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뇌물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크게 화를 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법정에서 주장했다. 뇌물 혐의를 부인하면서 국정농단 사건 피해자임을 거듭 강조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방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진동) 심리로 13일 열린 이 부회장 등에 대한 2회공판에서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진술조서 등을 공개했다. 장 전 사장은 특검에서 “박 전 대통령이 크게 화를 내 바짝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에 최순실이 해 달라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며 “특혜성 지원 의미를 희석시키기 위해서라도 최씨의 요청대로 따라갔던 측면도 있다”고 진술했다.
특검 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7월25일 이 부회장과의 개별면담에서 “내가 부탁을 했음에도 삼성이 대한승마협회를 맡아서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이 부회장을 크게 혼냈다. 이후 정씨에 대한 삼성의 승마 지원이 본격화됐다.
이에 대해 장 전 사장은 “만약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이 순수하게 승마 발전을 위해서였다면 (이 부회장을) 크게 질책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저희가 정씨에게 지원을 하자 대통령께서 화를 푸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을 보면 대통령 의도는 순수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고 특검에서 말했다. 이날 삼성 측 변호인은 “처음부터 정유라 한 명만을 지원하려고 한 건 아니다”라며 “코어스포츠와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최순실 영향력 때문에 삼성이 끌려갔다”고 주장했다.
반면 특검은 서증조사를 통해 “(피고인들은) 최순실 존재를 알고 그 요청에 따라 승마 지원을 해줬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부분은 이 부회장 지시를 받아서 이뤄졌다”며 “장 전 사장 스스로도 박 전 대통령이 정씨 지원 이후부터 이 부회장에게 고마움을 나타냈고, 대통령 태도가 상당히 좋게 바뀌었다고 진술한 것은 이 부회장이 정씨 지원을 충분히 인지했다는 간접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특검에 따르면 삼성이 정씨에 대한 승마 지원 특혜 문제가 박근혜정권을 무사히 넘어가도 차기 정권에서는 검찰 수사 등을 통해 큰 타격이 될 것을 예측하고 있었던 정황도 공개됐다. 지난해 9월 언론 보도로 승마 지원 문제가 터지자 삼성은 박상진 전 사장과 황성수 전 전무를 독일로 보내 최씨와 회의를 하도록 했다. 박 전 사장은 회의 내용을 자필 메모로 남겼다. 메모는 ‘야당공세 이번에는 OK’, ‘정권교체 검찰수사 가능성’, ‘NGO 고발 검찰 수사 개시에 우리도 자료 내야 함’, ‘삼성 폭발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황 전 전무는 조사를 받으면서 “당시 박 전 사장은 야당 공세가 이어져 운 좋게 넘어가도 대선결과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 검찰 수사 가능성이 있고 삼성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큰 폭발력이 있는 사건으로 생각해 기재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출석했다. 사진/뉴시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