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는 예술인들에게 거의 빙하기에 준하는 차갑고 견디기 힘든 시기였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은 공연현장을 초토화 시켰다. 협찬사를 유치하지 못한 대형공연들이 취소되었고 반도 차지 않은 객석을 바라보는 제작자들의 한숨소리도 커져가기만 했다. 여기에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사건까지 연이어 터지자 온 국민들의 관심은 온종일 TV에서 쏟아지는 각종 의혹들에 쏠렸고 공연계는 거의 빈사상태에 빠졌다. 문화예술 현장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 오는 5월9일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다. 차기 대통령과 차기 정부의 문화정책은 과연 어떻게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이소영 솔오페라단 단장(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수석부이사장)의 의견을 들어본다.(편집자)
우리나라의 문화 정책은 1990년대 이후 문화예술 검열제도가 폐지되면서 급격히 확대되고 예산도 확충돼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는 정부예산 총 지출대비 1% 이상의 문화예산을 확보하게 됐다. 그 후 꾸준히 증가해 2016년에는 6조6000억원으로 1.72%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가재정 16개 분류 부분 중 13위로 전체 예산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사회복지(29.2%), 일반·지방행정(15.4%), 교육(13.8%) 3개 분야에 비해 턱없이 작으며 예비비를 제외한 국토 및 지역개발(1%), 외교⋅통일(1.2%) 다음으로 작은 규모다.
다만 지난해 예산 6조6000억원은 전년대비 7.7% 증가한 수준이다. 최근 10년(2007년~2016년)사이 연평균 9.8%로 국가재정부분 중 가장 증가세가 크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다. 또 2016~202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문화·체육·관광 분야 지출을 총지출 대비 2%인 8조1000억원을 달성하고 2020년까지 5년 동안 연평균 6.8%로 문화·체육·관광 분야 지출 확대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나라의 문화재정은 OECD국가 평균이하다. 한국과 경제 수준이 유사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 그룹과 GDP 대비 문화재정을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문화재정 비율은 3만 달러 그룹 8개 국가의 평균인 1.1%에 훨씬 못 미치는 0.68%로 우리나라보다 문화재정 비율이 낮은 국가는 일본뿐이다.
물론 각 국가마다 사회적, 역사적 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단순 비교로 우리의 문화 정책을 폄하할 수는 없다. 아직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 상황에서 어쩌면 문화재정과 관련 정책이 꾸준히 확충되고 있다는 점은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정부는 1999년 ‘문화산업발전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제정했다. 이에 발맞추어 게임산업개발원(1999), 영화진흥위원회(2000)와 문화콘텐츠진흥원(2001)이 잇따라 설립되었다.
2000년 이후에 들어서면서 문화콘텐츠가 경제 성장 동력으로 여겨지게 됐고 나아가 창작영역과 소외계층의 문화향유에 이르기까지 문화정책이 보다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는 ‘문화융성’을 국정기조의 하나로 제시하며 문화를 ‘산업적 가치로 전환’시켰다. 한류라는 이름으로 영화, 드라마, 가요 등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인기를 끌며 관광 분야에도 파급돼 가시적 경제 효과가 어느 정도 증명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정국이 대선모드로 전격 전환되자 문화예술인들의 차기정부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 커지고 있다. 어떤 정당과 후보가 차기 대권을 잡을지는 모르겠지만 예술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 차기 정부에 바라는 문화정책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문화는 정권에 따라 출렁거려서는 안 된다. 지난해 10월, 모두가 ‘설마설마’ 하던 이야기가 실체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정부가 문화예술가들의 정치적 성향을 분석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이는 불순한 정치적 계산으로 문화계를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 문화계는 적잖은 충격에 휩싸였다. 분단의 역사 속에서 예술은 끊임없이 이데올로기에 휩쓸려 왔다. 전후 다른 이데올로기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예술가들은 남과 북에서 각각 핍박받거나 피해를 받았다. 그런데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뿌리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순수문화예술성향의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예총)과 민족주의성향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이 서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 한 예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두 단체에 대한 지원액 추이가 달라지면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 회원이 120만여명에 이르는 한국예총 지원금은 점점 줄이고 상대적으로 회원 수가 10만으로 훨씬 적은 민예총 지원금은 증액해 예총의 반발이 심했었다. 순수예술을 추구하든 민족주의 예술을 추구하든 그것은 헌법이 보장한 예술의 자유이고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 중 하나다. 차기 정부는 더 이상 이념적인 잣대로 보수와 진보로 일도양단해 이념적으로 더 가까운 세력들에게 이권을 주거나 그들을 정권의 전위대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문화는 천년의 지혜를 담는 그릇이라 했다. 차기정부는 이념에 휩싸이지 말고 냉정하고 공정한 잣대로 예술계를 지원해 더 이상 문화가 정치에 구류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정치와 이념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둘째, 코드인사는 이제 그만하고 현장을 아는 분야의 전문가들을 영입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인사 논란은 항상 제기된다. 차기 정부는 정치권을 어슬렁거리는 사이비 예술가들에게 현혹되지 말고 현장을 아는 전문성 있는 인사들을 과감하게 영입해야 한다. 문화관련 기관장들은 문화예술을 알고 행정능력을 겸비해야 한다. 거기에 정권이나 좌우 이념갈등에 흔들림이 없는 인사가 맡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행정능력을 겸비한 예술가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기관 내부에라도 전문가들을 영입해 일관성 있는 문화정책을 입안하고 문화예술인과 국민의 공감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문화예술은 그 분야가 너무 넓고, 분야별로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분야보다도 전문성을 갖춘 인물들이 필요하다. 특히 문화부 내부에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과감하게 투입시켜야 한다. 모르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있으며 제대로 된 지원정책을 펼 수 있겠는가. 경직되고 안일한 ‘공무원스러운’(예술인들이 공무원을 바라보는 시각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발상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예술 현장의 다양성과 차별성을 충분히 인지하는 전문 인력들을 투입해 새로운 정부는 구시대적인 코드인사로 빈축을 사지 않기를 바란다.
셋째, 취약계층·취약지역으로 국한되어 있는 문화향유 정책을 중산층까지 확대시켜야 한다. 대선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복지정책 공약은 문화예술부분에서도 ‘문화복지’라는 이름으로 소외계층이나 소외 지역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로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역대 정부들의 문화복지정책 대상은 소외지역과 계층으로 국한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중산층을 위한 문화복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가장 큰 축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 바로 중산층이다. 중산층도 문화가 필요하다. 그들의 문화감수성 향상과 문화활동이 생활권 안에서 가능하도록 문화 복지정책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보다 효율적인 문화예술 서비스와 지원을 위해서는 중앙 정부 차원의 제도와 그를 밑받침 할 수 있는 수요자들의 요구를 다양하게 수렴한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지원과 혜택은 오히려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000원 음악회’ 등이다. 소외지역을 찾아가는 음악회야 그 목적이 문화를 향유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문화 복지정책의 차원이라 하겠지만 대도시 한복판에서 시립예술단이나 구립예술단들이 내놓는 1000원짜리 음악회는 결국 예술의 가치를 저평가하고 시민들이 다양한 예술을 즐기고 선택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그러면서 문화예술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본다는 것은 지극히 이율배반적이다. 예술의 가치와 다양성을 인정하고 예술가들을 존중하는 사회적 문화와 인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넷째, 문예진흥기금의 안정적인 확충을 위해 복권수익금의 배분을 확대해야 한다. 2017년 복권 기금사업 총 지출 예상액은 1조1554억8800만원에 달하지만 그 중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책정된 비용은 371억9300만원에 불과하며, 이 역시 공연나눔, 창작나눔 등 저소득층 대상 문화향유 사업에 한정돼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단순 복지뿐만 아니라 예술 활동과 창작영역에도 예산 대상을 확대해 볼 필요가 있다. 복권수익금 배분을 확대해 문예진흥기금을 보다 확충하고 이를 문화나눔사업, 즉 저소득층을 위한 문화향유 사업뿐만 아니라 창작을 포함한 예술 활동 부분에도 확대해 예술인들의 안정적인 예술 활동을 장려해야 한다.
다섯째, 한류는 영원하지 않다.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드라마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불기 시작한 한류 열풍은 이제 드라마를 넘어 영화, K-POP, 화장품, 음식 심지어는 성형까지 확장됐다. 문화예술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지만 자칫 장기 전략이 없는 한탕주의와 얄팍한 상술로 혐한감정을 부추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염려스럽기도 하다.
물론 방송콘텐츠들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정부는 이러한 한류 콘텐츠에 많은 지원을 해오고 있고, 이러한 한류가 상당한 경제적 효과를 불러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국가의 정책은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을 적절히 안배해 지원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대중예술은 상업성을 가지기 때문에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순수예술은 정부차원의 지원이 없으면 자생하기 어렵다.
문화예술 사업은 공산품처럼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사업을 접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수백 년, 수천 년을 바라보는 장기 사업이다. 과거 배고픔에 못 이겨 빵 한 조각, 우유 한잔에 팔아치웠던 그림 한 점이, 한 곡의 음악이 오늘날 세계적 명화가 돼 수십억원의 가치를 올리고 세계적 명곡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을 새기며 그들을 낳은 조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예술은 바로 그런 것이다. 즉각 효과가 보이지 않더라고 후세에 지대하고 막대한 영향을 주고 한 나라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단기적 성과나 이익에 집착한다. 적어도 문화예술은 그런 잣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 천년을 넘어 수백 년이 흘러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를 발하는 것이 순수예술이다. 루브르박물관, 구겐하임 미술관, 오르세미술관 등에 전시된 그림들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이, 베르디와 푸치니의 오페라를 보라.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오며 그 예술품들이 올리는 경제적 파급력과 문화적 가치는 실로 엄청나다.
가까운 사례로는 세계적 권위가 있는 쇼팽 콩쿨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씨의 공연 티켓이 단 두 시간에 매진되고 CD는 발매되자 말자 완판된 예가 있다. 순수예술도 제도적으로 잘 지원하고 육성한다면 충분한 경제유발효과를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한 명의 아티스트가 국가의 위상과 가치에 주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리고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를수록 더 큰 빛을 발하게 된다. 그런 위대한 예술가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전제적으로 학교 예술교육의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예술가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예술의 향유는 느껴본 사람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는 대중예술과 상업예술의 긴 안목으로 바라보고 형평성에 맞는 지원과 육성책을 내어 놓길 바란다.
21세기에 이르러서 문화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대두되면서 문화가 국가 경쟁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됐다. 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문화예술이라고들 말한다. 청소년 시절 읽었던 시 한 구절이 인생항로의 평생 좌표가 되기도 하고 어린 시절 배웠던 가곡 한 곡이 그 사람의 평생 감성 텃밭이 되기도 한다. 차기 정부가 자율성과 창의성, 다양성이 보장되는 백년대계를 넘어 천년대계의 문화 예술정책을 세워주길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써 진심으로 기원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동양예술극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을 만나 '문화예술, 미래로 가는 다리'라는 주제로 강연에 앞서 공연 관람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