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국회에 제출한 상법개정안이 재계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재계는 감사위원선출시 대주주의결권 제한이나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이 실시될 경우 국내기업은 외국투기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할 것이며, 자칫 경영권을 보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큰 혼란이 예상된다고 항변한다. 상법개정안의 주요내용은 무엇이고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한만수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진단을 들어 본다.<편집자>
상법상 제도 개편 필요성과 그 한계
주식회사의 소수주주의 권리행사 강화를 골자로 하는 상법개정안이 발의돼 여야합의로 국회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최근 보도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이사 선임에 있어서 집중투표제의 의무화, 주주총회 전자투표제 의무화, 사외이사 선임제도의 개선, 감사위원의 독립성 제고를 위해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과 일반 이사의 분리선출 등이 주요 개정 내용이다.
이 가운데 사외이사 선임제도의 개선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최대주주 제외 ▲우리사주조합 및 소액주주의 사외이사 추천권 ▲전·현직 임직원의 사외이사 취임 제한 기간을 2년에서 5년으로 연장 ▲사외이사의 임기 상한 6년으로 제한 등이다.
날로 심해지고 있는 경쟁적 경제 환경에서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경영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한편의 요청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의 많은 지분을 소유하는 주주가 적은 지분을 소유하는 주주의 권리를 가로채거나 근거 없이 이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요청이 있다.
소수주주의 권리보호 면에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선이 어디이며, 소수주주나 대주주를 아우르는 기업전체의 이익을 위해 소수주주의 권리를 양보할 수 있는 선이 어디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기업 내지 회사라는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회사의 기본적 개념은 여러 사람이 일부씩 출자해 큰 자본을 만들어 영리활동을 하는 기구다. 다시 말해, 회사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개별 출자자가 단독으로 동원할 수 없는 대규모 자본을 모집하고, 영업활동에 따른 손익의 계산과 분배의 간편성 등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된 추상적, 개념적 장치’다.
결국 회사의 모든 행위는 그 출자자의 이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회사의 어떤 행위가 유효하게 허용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출자자의 입장과 관점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주식회사의 경우 회사의 어떤 행위가 주주의 관점에서 허용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대표적인 잣대는 ‘주주평등의 원칙’이다. 주주 각자는 출자한 몫에 따라 회사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이익을 분배받는다는 의미로, 사유재산의 보호라는 자본주의의 기초정신에 충실한 원칙이며, 이론의 여지없이 우리나라 회사법 전체를 관통하는 대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배주주나 대주주의 독단적·불법적 회사 경영 방지해야
주주평등의 원칙은 회사제도의 운영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핵심적 수단이다. 소수주주가 권리를 남용하는 경우 또는 소수주주의 권리를 모든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부 희생시킬 필요가 있는 경우 이를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제한할 수 있을 뿐이지(예: 회사 주식의 95% 이상을 보유하는 지배주주가 소수주주들에 대해서 그 보유 주식의 매도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경우), 아무런 명분 없이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소수주주 권리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것이다. 이런 회사법적 정의의 기준에 비추어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개정안의 핵심적 내용의 타당성 여부를 살펴본다.
우선 ‘다중대표소송제도’에 관해서 보면, 어떤 회사(Parent Company)의 자회사(Subsidiary)의 경영자가 경영과정에서 자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는 경우 모회사의 소수주주가 자회사의 주주는 아니기 때문에 그 경영자의 책임을 추궁하는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그러나 자회사가 경영자 잘못에 따른 책임을 제대로 추궁하지 않을 경우 모회사나 지배회사의 소수주주가 대신 자회사 경영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등 책임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두고 이중대표소송, 2단계 이하의 손자회사의 주주에 대해서는 다중대표소송이라고 부른다. 이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는 현행 상법의 해석과 관련해서 긍정론과 부정론이 나뉘어져 있지만, 부정론이 우세하며 대법원 판례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모회사의 경영자가 직접적으로 회사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와 자회사라는 기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회사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소수주주의 이익보호라는 관점에서 보면 굳이 구분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미 서구에서 널리 시행되고 있고, 2003년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 개선방안의 하나로 권고한 바 있는 다중대표소송 도입은 긍정적으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전자투표제’ 도입의 경우 상장법인의 소액주주들은 생업으로 또는 무관심으로 주주총회에 직접 출석하거나 서면 위임장의 제출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일이 매우 드물다. 그 결과 사실상 주주총회에 출석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나 경영자의 뜻대로 회사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함 없이 전자투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상법도 주주총회에 참석할 수 없는 주주들에게 권리행사의 기회를 부여하고, 정족수 확보를 통한 주주총회 활성화와 외국인 주주들의 투자유도를 목적으로 지난 2009년 5월 주주총회의 전자투표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전자투표 허용여부가 기업의 선택에 맡겨져 있어 거의 활용이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그 이행을 강제해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사 선임에 있어서의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 당 이사후보 1인을 선정할 의결권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부여해 소수주주들에게도 그들을 대표할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제도다. 그간 회사는 정관 규정으로 이를 배제할 수 있었지만, 이번 개정안은 정관 규정으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지 못하도록 강제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제도는 1주당 복수의 의결권을 주는 것으로서 1주당 1의결권을 갖는다는 주주평등의 원칙에 거꾸로 반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현행 선택적 집중투표제를 의무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주주평등의 원칙이라는 회사운영에 있어서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사외이사 선출제도 개선안’의 타당성 여부는 회사법에서 사외이사에게 맡긴 역할과 그 기능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회사의 사외이사 제도는 사내이사만으로 구성된 이사회만으로는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진의 독단을 막기 어렵기 때문에 회사나 그 경영진과 밀접한 관계나 중요한 이해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으로 하여금 경영진으로부터 독립해 이사로서의 임무를 수행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그렇다면 사외이사의 선임에 경영진이나 경영진의 선임과 해임을 좌우하는 대주주가 관여하는 것은 사외이사 제도의 취지에 근본적으로 반하고 사외이사 제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최대주주를 제외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소수주주에게도 사외이사의 추천권을 줄 필요가 있다.
다만 경제·사회적 상황이 빠르게 변동하는 현재 전·현직 임직원의 지위에서 벗어 난지 2년 정도 경과하면 사회통념상 회사나 대주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사외이사 취임 제한 기간을 임직원의 지위 상실 시점으로부터 2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또 사외이사의 직도 너무 오래 수행하면 자칫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성을 상실하기 쉬워 그 임기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사외이사가 그 직을 충실하게 수행한다면,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가 그 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으므로 연임이 가능하도록 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주식회사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을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는 제도’를 보면, 회사의 감사위원은 이사의 행위를 감시·감독하는 직책을 수행하기 때문에 감시·감독의 대상인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는 것은 전형적 이해충돌 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과 일반 이사를 분리해 별도로 선출하는 것은 감사제도의 본질에 비추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소수주주의 권리 보호라는 명분하에 지배주주나 대주주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겠지만, 지배주주나 대주주가 자신의 지분에 상응하는 권리의 행사를 넘어서 독단적으로 혹은 불법적으로 회사를 경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런 독단적 또는 불법적 경영권 행사를 방지하기 위해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하는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는 것을 두고 ‘경영권이 침해된다’는 모호한 명분으로 반대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할 것이다.
경영권 위협하는 적대적 기업인수 대책도 필요
그렇지만 위와 같은 제도 도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영권 행사의 애로점을 외국의 헤지펀드 등 적대적 기업인수 세력이 기업인수 전략으로 남용하는 것을 막는 것 역시 필요하다. 특히 과거 20~30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자본자유화에 의해 형성된 투기자본 세력이 적대적 기업인수를 수단으로 단기차익을 올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기업환경 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가의 리더십이 불안하면 정상적인 국가경영이 불가능하듯 경영권이 정립되지 않은 기업은 안정적 성장을 지속하기 어렵고, 이러한 경영권 불안정은 소수주주까지 포함한 모든 주주에게 해로운 결과가 될 것이다. 따라서 지배주주나 대주주가 독단으로 소유지분을 넘어선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상법상 제도의 도입이 필요한 것과 별개로 기업의 경영권 안정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확보돼야 할 것이다.
상법상 현재 허용되고 있는 자기주식 취득제도, 종업원지주제 외에 서구에서는 적대적 기업 인수에 대한 방어제도나 전략으로 ‘황금낙하산 제도’(golden parachute, 적대적 기업인수 대상회사의 경영진이 퇴임하는 경우에 그들에게 거액의 퇴직위로금을 지급하도록 정관에 규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독약계획 제도’(poison pill plan, 적대적 기업인수 이전에 대상회사의 주주들에게 일정한 사실이 발생하면 주식으로 전환하거나 낮은 가격으로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증권을 발행하는 제도)등이 많이 채택되고 있다.
아울러 ‘경영진에 의한 차입매수 제도’(leveraged buyouts, 적대적 기업인수 대상회사의 경영진이 회사의 재산을 담보로 제공하고 차입한 자금으로 회사의 주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상어격퇴 정관변경 제도’(shark repellant amendments, 적대적 기업인수의 위험이 나타났을 때 적대적 매수가 어렵도록 정관개정을 허용하는 제도), ‘백기사 제도’(white knight, 적대적 기업인수의 대상회사의 경영진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다른 회사로 하여금 대상회사의 주식을 매수하도록 해 적대적 기업인수 시도를 무산시키는 제도) 등도 있어, 이들 제도의 국내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주주의 독단과 전횡을 막는 상법상 제도를 도입하여야 할 필요성과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기업인수 시도로부터 경영권의 안정성이 보장되도록 할 필요성은 반드시 상충되는 것은 아니다. 2가지 필요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타협적이고 절충적인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만 그러한 상호 윈-윈(win-win)하는 제도는 단기간에 즉흥적으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나라의 제도와 선례를 종합하고, 우리나라 고유의 기업환경, 노사환경을 고려해 상당 기간에 걸쳐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에서 지난해 10월27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