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19대 대통령 선거를 알리는 현수막이 길거리에 내걸리면서 각 후보의 슬로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대 대선에서 승리한 슬로건은 당시 시대정신을 잘 포착했다. 20년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슬로건은 ‘경제를 살립시다’(1997년)였다. 당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속에서 나온 문구였다. ‘새로운 대한민국’(2002년 노무현)도 당시의 시대적 과제를 상징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성공하세요, 실천하는 경제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내세워 승리했다.
대선이 불과 20여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각 정당의 주요 후보 캠프들은 이미 후보의 강점과 약점을 고려한 전체적인 메시지 전략을 수립했다. 유권자의 마음을 공략할 이른바 ‘슬로건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각 캠프는 후보의 시대정신과 비전을 담은 짧고도 강한 메시지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구상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슬로건은 ‘나라를 나라답게’다. 지난 겨울 전국의 광장에서 ‘이게 나라냐’고 외친 촛불민심을 대변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문 후보 측 한정애 홍보본부장은 “지난 겨울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게 나라냐’다. 누구나 맞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나라를 국민과 함께 만들겠다는 문 후보의 답”이라고 설명했다.
‘든든한 대통령’이라는 문구도 함께 쓴다. 촛불민심에 응답하면서 안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한 본부장은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준비된 정당의 후보라는 뜻도 담고 있다”고 부연했다. 2012년 대선 당시에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인간적 매력은 잘 드러냈지만 정권교체라는 시대 과제를 진취적으로 보여주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든든한 대통령’은 그보다 직접적이고 강인한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국민이 이긴다’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그동안 강조해온 ‘국민 통합’이 내포돼 있다. 국민과 함께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안 후보는 지난 15일 후보자 등록 직후 “저는 지금까지 항상 국민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왔다. 국민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하려고 노력해왔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결국 국민이 승리했다는 의미와 소속정당인 국민의당을 모두 강조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대선을 치러야 하는 범보수 정당의 후보들은 ‘보수의 적통’이라는 이미지를 선점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슬로건에서 각각 ‘서민’과 ‘보수’를 핵심가치로 강조하며 미묘한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홍 후보는 본선 슬로건을 ‘당당한 서민 대통령’으로 정했다. 후보 자신이 밑바닥부터 출발한 ‘흙수저’라는 이미지를 내세워 서민과 중산층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홍 후보 측 김성원 대변인은 “무학의 아버지와 문맹의 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흙수저 출신인 홍 후보가 서민들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는 평소 신념”이라며 “서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설명했다. 홍 후보는 부제로 ‘지키겠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이라는 문구를 사용하며 보수의 가치를 강조하는 동시에 최근 양강 구도에 대한 보수층의 위기의식을 자극하고 있다.
유 후보는 ‘보수의 새 희망’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건전하고 따뜻한 새로운 보수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설자리를 잃은 보수의 미래를 고민하는 지지층을 공략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라는 부제도 달았다. 유능한 경제 전문가이자 개혁가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서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대선 슬로건을 ‘노동이 당당한 나라’로 내세우며 진보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노동을 자신의 상징으로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사회적 편견을 없애겠다는 게 심 후보 측의 설명이다. 노동 문제를 차기 국정과제에서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제19대 대통령 후보 문재인·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기호 순, 왼쪽부터) 주자들이 일제히 22일간의 선거유세에 돌입한 지난 17일 본격적인 레이스를 시작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