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행발 금융혁신)③권역 없는 경쟁, 금융권도 변해야 산다

'디지털금융' 핵심부서 부상…시간 제약 없는 '유연근무' 시도

입력 : 2017-05-02 오전 8: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영업을 시작한지 한달여 만에 기존 은행권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인터넷은행의 금리 우위에 맞서 여·수신 금리를 손대는가 하면, 내부적으로는 디지털금융 부서를 핵심부서로 개편하고 영업시간의 개념을 바꾸는 등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인터넷은행이 은행업계의 새로운 플레이어로 등장하면서 시중은행들 사이에 '디지털' 바람이 불고 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디지털뱅킹이라는 흐름이 대세가 되면서 조직 운영을 그에 따라 바꿔야 할 필요가 생기고 있다"며 "케이뱅크가 보여준 비대면 채널의 가능성을 보더라도 시중은행의 조직은 과거보다 더 유연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조직개편을 통해 디지털뱅킹 사업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주 기존 스마트금융그룹을 디지털금융그룹으로 개편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앞으로는 애매모호한 개념의 '스마트' 대신에 '디지털'이라는 단어로 명칭을 통일하겠다는 방침에서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디지털금융그룹에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등을 뱅킹과 접목한 사업을 추진한다"며 "특히 기존 모바일뱅크 플랫폼의 사업을 고도화하고 새로운 사업 전략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모바일뱅크 사업부를 영업기획그룹으로 편입시켜 영업력을 강화하고 빅데이터 분석, 디지털운영부, 스마트고객센터 등 디지털뱅킹 관련 부서를 한데 모아 시너지를 만드는 방향을 추진 중이다.
 
농협금융지주의 경우 농협금융은 작년 말 지주 내에 디지털금융단을 신설했고, 주력 계열사인 농협은행도 디지털뱅킹본부와 핀테크사업부, 빅데이터전략단을 만들었다. 농협은행은 지난달 디지털뱅킹 현장전문가를 선발했으며,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영업 공간과 업무 시간의 제약이 없는 인터넷은행의 출범은 기존 은행 영업시간의 틀까지 흔들고 있다. 케이뱅크의 24시간, 완전 비대면 은행 모델이 시장에 안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은행들도 인터넷은행의 제약 없는 영업시간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실제로 케이뱅크가 시간대별 가입자 비중을 분석한 결과 은행 업무시간 이후(오후 6시부터 자정, 자정부터 오전 9시) 가입한 고객이 전체의 42% 가량을 차지했다.
 
일반적인 은행의 영업시간(오전 9시~오후 4시) 개념이 없는 24시간 은행이 나타나면서 평소 은행 방문이 힘들었던 사람들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 시중은행 가운데 국민은행은 작년 말부터 시범 도입한 유연근무제를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특히 유연근무제 중 국민은행의 '2교대 운영지점'은 오전 9시와 정오로 직원의 출근 시간을 나눴다.
 
상담 고객이 많은 오후 시간대에 인력을 집중하고, 오후 출근하는 직원을 활용해 영업시간을 오후 4시에서 7시까지 늘린다. '애프터뱅크'의 경우 은행 개점시간을 10시~12시로, 폐점 시간도 오후 5시~7시로 조정한 특화점포 모델이다.
 
우리은행(000030)은 2일부터 전 계열사에 유연근무제를 전면 도입한다. 우리은행이 선택한 유연근무제 방식은 재택근무와 같은 업무공간을 벗어나는 개념이 아닌 출퇴근 시간을 직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시차출퇴근제다.
 
신한은행은 2월부터 작년 도입한 스마트근무제를 보완한 ‘스마트근무제 2.0’을 실시 중이다. 본점과 서울 강남 등 각각의 거점 지역에 스마트워킹센터를 신설해 자율출퇴근 횟수를 월 2일에서 주 3일로 대폭 확대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는 조직문화 개선 차원에서 도입한 유연근무제를 고객 체감도가 높은 방향으로 전환하는 곳이 생기고 있다"며 "직원들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디지털 중심의 채널 효율화를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분주하게 인터넷은행 흥행에 대응하고 있지만, 실제 성과를 낼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한 관계자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활용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적잖은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은행들이 우선적으로 사업 기획부서를 손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한달여간 인터넷은행의 돌풍을 '찻잔 속 태풍'으로 보려는 시각도 같은 맥락이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인터넷은행이 벤치마킹한 일본의 지분은행의 경우 출범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자산 규모는 우리나라 대형 은행의 10분의 1 수준(20조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은행의 등장으로 새로운 시장이 열린 이상, 디지털 강화가 금융권의 공통 숙제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자산 규모를 비교하는 것만으로 인터넷은행의 전망을 논할 수는 없다"며 "인터넷은행이 기존 고객층이 두터운 은행들과 일대일 경쟁을 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디지털 중심의 외연 확장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새 사업 분야의 고객 선점 면에서는 은행보다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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