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탄핵부터 대선정국까지 먹거리 물가가 쉴 새 없이 널 뛰었다. 정부가 어수선한 틈을 타고 대표적인 서민음식들의 기습적인 가격 인상이 봇물을 이루며 고삐가 제대로 풀렸다. 가뜩이나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가 높은 상황에서 즐겨 먹는 음식까지 줄줄이 가격을 올리자 소비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같이 식품 가격 인상이 끊이지 않자 일각에선 국정 혼란과 조기 대선이라는 권력 공백기를 틈타 업체들이 가격을 기습적으로 올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19대 대선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차기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에 어떤 드라이브를 걸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달 1일 치킨과 라면을 중심으로 가격 인상이 단행된 이후 다른 서민 먹거리 음식들도 가격이 들썩이며 5월 들어 줄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BBQ는 이달부터 10개 품목의 가격을 품목별로 8.6~12.5% 인상했다. BBQ의 가격 인상으로 교촌치킨 등 다른 치킨업체들의 가격인상 동참 행렬 가능성도 높아졌다.
또 다른 국민간식인 라면값도 올랐다.
삼양식품(003230)은 이달부터 삼양라면을 비롯한 12개 브랜드 제품 권장소비자가격을 평균 5.4% 인상했다. 앞서 지난해 말 1위 라면업체
농심(004370)도 12개 제품의 권장소비자가격을 평균 5.5% 인상시킨 바 있다. 대선을 하루 앞둔 8일에는 소위 '국민 음료'인 사이다 값도 올랐다.
롯데칠성(005300)음료는 칠성사이다 등 14개 제품의 편의점 판매가격을 평균 7.5% 인상했다.
올해 들어 소비자물가도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올 1월에 4년 3개월 만에 2.0%를 기록한 소비자물가는 2월 들어 상승률이 1.9%로 잠시 주춤했지만, 3월에 다시 57개월(4년 9개월) 만에 최고치인 2.2%까지 급등했다. 4월 소비자물가 역시 2%에 근접한 1.9% 수준에 머물면서 물가 불안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결국 '권력 공백기'에 따른 관리 감독 부재가 물가상승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체제가 지난해 말부터 부당한 가격인상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이마저도 결과적으론 '식언'이 됐다. 가격인상 주체들은 불안정한 권력에 아랑곳 하지 않고 앞다퉈 값을 올렸다.
앞서 박근혜 정부도 출범 초기 부터 담뱃세 인상 등으로 힘없는 서민들만 힘들게 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새로 출범한 차기 정부가 물가 안정의 고삐를 당길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경기 회복을 책임지는 이른바 '경제대통령'이 필요한 시점인 가운데 이를 위한 첫 단추 역시 '물가안정'이 될 전망이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이 19~69세 기혼여성 10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차기 정부가 최우선으로 고려할 정책 1위를 '부패척결(34.5%)'로 답한 데 이어 '물가안정(25.2%)'을 중요한 과제로 꼽기도 했다.
업계 안팎에선 문재인 당선인이 정부 주도의 복지정책을 강조하고 서민경제 활성화를 핵심 모토로 내건만큼 출범 초기부터 물가 안정을 위한 강도 높은 가격 통제와 감시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쟁사의 가격 인상만 바라보다 인상 시기를 놓친 식음료 업체들은 새 정부 출범에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정부 출범 초기엔 가격인상을 섣불리 나서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대선 이전에 가격인상을 매듭지은 업체들만 한 숨 돌린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기업에게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인 만큼 국민들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가 물가 정책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 이유다.
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매년 그랬듯이 지난 연말 가공식품 가격이 요동쳤고 특히 대선 이전에 빨리 가격을 올려놓겠다는 기업들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났다"며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엔 한계가 있다고 해도 독과점 체제가 많아진 시장에서 선두사업자들이 가격을 주도하고 후발주자들이 가격을 따라 올리는 고착화 된 현상을 바로잡는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14일 최상목 기획재정부 차관이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물가관계차관회의 겸 범정부 비상경제대응TF 회의를 주재 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