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기자)불안한 심리가 불황 사이클을 만든다

호황vs불황|군터 뒤크 지음|안성철 옮김|원더박스 펴냄
탐욕과 두려움이 시장 교란 유발…'절제·중용' 갖춰야 안정적 성장

입력 : 2017-05-25 오전 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경제학 이론에서는 인간을 쉽게 수치화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가진 동물로 만들어 버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호모이코노미쿠스(경제적 목적만을 고려해서 행동하는 인간)가 실존한다는 생각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
 
IBM 최고기술경영자를 지낸 독일 출신의 실물경제 전문가 군터 뒤크는 개개인을 ‘합리적 존재’로만 규정해 온 전통 경제학에 반기를 든다. 인간은 주변환경, 그로 인한 심리적 변화에 따라 때때로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을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호황의 기쁨에 취해 사치와 낭비를 일삼거나 불황의 두려움에 편법을 일삼는 경제적 주체들이 이에 해당된다. 그들의 ‘비합리적인 결정’들은 실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침에도 지금까지 공적인 논의에서 철저히 배제돼 왔다.
 
뒤크의 신간 ‘호황 vs 불황’은 이러한 현상에 의문을 던지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기존 경제학 서적들과는 달리 경기 변동의 문제를 ‘인간’ 그 자체의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뇌부터 심리, 사회 등의 요소들을 실물 경제와 논리적으로 연결시켜 나감으로써 오늘날 설명되지 못하던 자본주의의 한계를 명료하게 짚어준다.
 
서두에서 저자는 경기변동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의 심리를 ‘돼지 사이클’로 설명한다. 1928년 독일의 경제학자 아르투어 하나우가 창시한 이 개념은 돼지고기의 가격 변동에 각 경제주체의 심리와 행동이 변화하는 방식을 다루고 있다.
 
전개 과정은 이렇다. 돼지고기 가격이 완만한 수준으로 오르면 가축업자들은 기뻐하며 키우는 돼지의 양을 적당한 수준에서 늘린다. 하지만 점차 소비가 늘고 가격이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하면 그들은 돼지를 사재기하기 시작한다. 향후 소비가 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단기적 탐욕에 눈이 멀어 비합리적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후 가격이 높아져 소비자들이 대체재로 닭고기를 찾게 되면 서서히 돼지고기 가격은 하락한다. 그때서야 정신이 든 가축업자들은 재고에 대한 두려움에 돼지를 싼값에 내놓기 시작한다. 결국 가격은 공짜 수준의 헐값이 되고 시장엔 질 나쁜 고기들이 속출한다.
 
탐욕이나 두려움 등 인간의 심리가 요동치지 않았다면 시장은 왜곡되지 않았을 것. 저자는 이처럼 경기변동에 따른 인간의 심리와 대응을 ‘국면적 본능’이라 부른다. 그는 “우리가 경기 순환의 메커니즘을 알아도 그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고 각 국면의 문제를 심화시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며 “인간의 심리가 호, 불황기의 사이클을 증폭시키며 시장의 교란을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한 국가나 기업의 경기변동은 돼지 사이클의 총체적 확대다. 대다수 기업들의 경우 호황 초기 신기술이 적용된 신제품 개발에 매진한다. 하지만 호황 후기에는 잘 팔리는 감정에 도취돼 외형과 디자인을 강조한 사치스러운 제품들을 만드는 데만 치중한다. 그러다 정점을 지난 경기가 불황을 맞으면 어떻게든 팔아야겠다는 생각에 가격 대비 합리적인 제품 생산에 매달린다. 그러다 결국 품질조차 포기하고 가짜, 싸구려 제품 생산에만 집중하는 불황 후기를 겪는다.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대표적 사례. 저자는 당시 미국 투자은행의 직원, 신용평가회사 등 소위 합리적이라 칭하는 전문가들이 위기의 진폭을 강화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들이 사회 전반에 생산해 낸 두려움이 전문지식이 없던 비전문가들의 채권과 헤지펀드 구입을 촉발했다”며 “직접적 피해는 고스란히 시장으로 전가됐다”고 말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국면적 본능’은 대체로 인간 뇌 속의 여러 물질에 의해 작동된다. 행복한 느낌을 전달하거나 고통을 잠재우는 엔도르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아드레날린, 리듬을 조율하는 세로토닌 등이 각 상황에 따라 발생하며 인간의 행동 변화를 유발한다.
 
“긴장이 이완된 뇌는 경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스트레스를 받는 뇌는 또 어떤 생각을 할까? 사람들의 뇌는 두 경우마다 다른 형태의 생각을 한다! 이것이 이 책의 주제다.”
 
그렇다면 극심한 경기 변동 때마다 인간 본성에 의한 결과라 여기고 순응해야만 할까.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래도 해답은 있다”고 말한다. 시기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절제와 중용’의 가치를 내면 속에 확립하는 것. 그렇게 한다면 최소한 날뛰는 경기변동만은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구체적인 해답을 도요타의 경영철학에서 찾는다. 1950년부터 도요타는 자동차가 덜 팔리건, 더 팔리건 상관 없이 평상심 유지하는 기업관을 지켜왔다. 그리고 그 철학에 기초해 경기 변동을 타지 않으면서 창조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섰다.
 
저자는 “과거 아메리카대륙의 인디언들 역시 먹고 사는데 필요한 만큼만 들소를 사냥하며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갖고 살았다”며 “절제와 중용은 어쩌면 뻔한 이야기지만 언제나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라고 말한다.
 
호황vs불황. 사진제공=원더박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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