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경제민주화 입법 윤곽이 잡힌다.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상법 개정안 일부는 6월 임시국회 문턱을 넘을 것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지배구조 개편 이슈로 연결된다. 흐름을 관통하는 핵심은 ‘재벌개혁’이다. 문재인정부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임명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으로 실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6월 임시회는 그 첫 단추다.
무엇보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법안들과 달리 국회 통과가 무산돼도 법 시행령 개정만으로 실현이 가능하다.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된다. 관계 당국은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상조 후보자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 자료에서 “대기업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금전적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미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45개 기업집단 소속 225개 계열사로부터 내부거래 현황 자료를 제출받았다. 규제 대상 확대와 동시에 당국의 감시 수위도 높아질 전망이다.
상장사 기준으로 총수와 친족 지분율이 30% 이상(비상장사는 20% 이상)이면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다. 하지만 2015년 2월 규제가 시행된 이후 실제 법 집행 사례는 드물었다. 지분율을 기준까지 낮춰 규제를 피해가는 경우가 많았다. 총수일가 모기업의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 간접 지원도 많아 법망이 허술하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았다. 개정안은 지분율을 20%로 낮추고 과징금 수준도 높이겠다는 내용이다. 법안 통과시 새롭게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기업들은 삼성물산, 이노션, 현대글로비스, SK D&D, 롯데쇼핑, 한화, GS건설 등이다. 주요 그룹들이 대부분 얽혀 있다.
이로 인해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도 대두된다. 규제 대상 기업들이 20% 밑으로 총수일가 지분율을 낮출 것이란 관측에서다. 갑자기 내부거래 규모를 줄이기가 쉽지 않아 지분 변동의 가능성이 크다. 지원성 거래가 없다면 총수일가 지분을 유지하겠지만 내부거래 규모를 줄이지 않으면 논란의 소지가 남는다. 그렇다고 지분을 매각하자니 규제를 회피해 일감몰아주기는 계속하겠다는 의도로 의심받을 수도 있다. 이래저래 규제 대상 기업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지난 3월 임시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했던 상법 개정안 일부도 6월 임시국회 통과 확률이 높다. 전자투표제 의무화와 다중대표소송제가 유력하다. 전자투표제는 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전자적인 방법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주주들이 자회사나 손자회사의 경영진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소액주주권을 보호하는 취지에서 발의됐다. 재계에선 그러나 소송 리스크가 확대되고 주주들의 의견이 왜곡될 수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상법 개정안 중 감사위원 분리 선임과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대해서는 논쟁이 뜨겁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의 경우 감사위원회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위원 선출시 최대주주의 의결권 행사 범위를 지분율 3%까지 제한한다. 이에 따라 최대주주의 경영권이 지나치게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제도 도입시 삼성전자, 현대차, SK이노베이션 등 주요 그룹 핵심 계열사들에게서 외국인 주주의 의결권이 우호지분의 두 배를 넘게 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집중투표제 역시 외부 투자자가 연합해 의결권을 모으면 자신들이 원하는 인사를 이사회에 앉힐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자유한국당이 경영권 방어가 어렵다는 이유로 특히 두 법안에 대해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러나 둘 중 하나는 도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어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한 시장 전문가는 “감사위원들도 이사회 구성원으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관여하게 된다”며 “표결 결과를 좌우할 정도가 아니라서 적대적 M&A 우려는 지나치지만, 특정 주주를 대표하는 만큼 논의 내용이 외부에 유출되는 등 이사회 운영상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주회사 요건을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규모가 큰 자회사를 소유한 지배기업의 경우 공정거래법 개정에 따라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될 가능성도 전면 배제할 수 없다. 입법 우선순위에서는 다소 밀려난 듯 보이지만, 기존 순환출자 해소와 금산분리 규제 강화 리스크도 상존하고 있다. 삼성은 순환출자 문제와 더불어 삼성생명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7.55%)이 특히 불안요소다. 현대차도 순환출자 고리가 남아 지주회사 전환 압박을 받고 있다. 순환출자가 없는 한화 역시 금산분리나 지주 강제 전환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중간금융지주 제도 도입이 재계 근심을 덜어 줄 수도 있지만, 재벌개혁 기조가 강해 발의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해당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 계류 중인 경제민주화 법안 중 지배구조 현안으로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며 “마땅한 대책 없이 국회 동향만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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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