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기업들이 앞 다퉈 '상생'을 외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나타난 속이 뻔히 보이는 변화지만 중소기업에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대기업들이 '슈퍼갑'의 지위를 내려놓겠다는 선언은 반갑다.
삼성전자는 이달부터 1차 협력사는 물론 2차 협력사들까지도 물품대금을 어음 대신 현금으로 결제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시작했다. 이번 조치를 통해 3000여곳에 달하는 2차 협력사들은 자금난에 빠질 위험을 낮출 수 있게 됐다.
현대·기아차는 중소기업의 인재채용에 팔을 걷고 나섰다. 전국에서 대규모 채용 박람회를 열며 200여곳의 협력사에 우수 인재를 연결하며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돕고 있다.
유통가에도 상생바람이 거세다. 국내 1위 대형마트 사업자인 이마트는 중소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기의 우수 상품을 선정해 연구·개발·판로확대 등을 지원하는 '메이드인 코리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가 하면 PB상품인 노브랜드의 중소기업 생산 비중을 늘리며 해외진출도 돕고 있다.
골목상권 침해 우려를 씻기 위한 노력도 한창이다. 이마트는 죽어가는 전통시장에 노브랜드 매장을 세우며 소비자들을 끌어 모으는 상생형 매장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최근 서울 송파구에 현대시티몰 가든파이브점을 오픈하면서 매출의 일정부분을 중소상인에게 임대료 명목으로 제공하는 상생모델을 제시했다.
한때 중소 납품업체에 대한 갑질로 질타를 받았던 롯데홈쇼핑도 최근 대표이사가 협력회사를 직접 찾아가는 등 소통과 상생을 강조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을'들을 위한 칭찬할만한 변화다. 하지만 칭찬을 보내는 시점은 조금 늦춰야 할 것 같다. 지금의 상생 바람이 반짝하고 마는 이벤트가 아닌 진짜 변화의 시작이라는 점이 확 될 때 박수를 보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대한민국은 크게 바뀌었다.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잡게 됐으며 이 가운데 '나만 잘되면 된다'는 집단이기주의도 개개인, 개별 집단의 정서 깊숙한 곳에 박히게 됐다. 중소기업의 숨통을 조이며 몸집을 불려온 대기업의 갑질은 이같은 집단이기주의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를 나아가도록 한 힘은 집단이기주의가 아닌 연대에서 나왔다. 모두가 손을 맞잡고 만들어 낸 광장의 촛불은 새 시대를 여는 동력이자 희망이었다. 이제는 경제에서도 모두가 힘을 더할 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상공인이 '갑을 관계'를 버리고 '상생'할 때 비로소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업2부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