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일부 대기업의 지난해 외상거래가 늘었다. 협력사로 있는 중소기업들은 제 때 현금을 확보하지 못해 유동성 위험에 노출됐다. 대기업들은 어음을 없애고 현금결제 비중을 늘린다고 했지만, 불황 속에 자체 재무개선에만 매달리면서 상생은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26일 <뉴스토마토>가 전자공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 및 그 종속기업(이하 연결기준)은 지난해 매입채무가 6조4850억원으로 전년(6조1872억원)보다 4.8% 늘었다. 매입채무는 필요한 원재료나 부품을 외상매입할 때 발생한다. 매출에 비례해 매입채무도 늘어날 수 있지만, 삼성전자 매출은 지난해 201조8667억원으로 전년 대비 0.6% 늘어나는데 그쳤다. 삼성전자는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을 위해 매입채무를 가급적 줄인다는 방침을 세우고 현금결제를 1·2차 협력사로 확대해왔다. 이로 인해 2012년 이후 매년 매입채무가 감소세를 보였지만, 지난해 다시 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LG전자도 지난해 매입채무가 늘었다. 2015년 6조869억원에서 2016년 6조7463억원으로 10.8%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이 56조5090억원에서 55조3670억원으로 2% 줄었음에도 매입채무는 늘어, LG전자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LG전자는 지난해 모바일 사업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에 따른 재무부담이 협력사들에게 전이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면 SK하이닉스는 매입채무가 줄었다. 지난해 6961억원으로 전년(7913억원) 대비 12%의 감소폭을 나타냈다. 매출이 줄어 매입채무도 줄어든 듯 보인다. 지난해 매출은 17조1979억원으로 전년(18조7979억원) 대비 8.5% 감소했다.
수만가지 부품을 협력사들로부터 조달받는 현대차의 지난해 매입채무는 6조9859억원으로 전년(7조811억원)보다 1.3% 줄었다. 역대 최대치를 찍은 지난해 매출(93조6490억원)과 반대되는 흐름이다. 장기간의 노조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 등이 매입채무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포스코도 수천곳의 중소기업들과 거래하며 외상거래를 발생시킨다. 특히 지난해 매입채무가 큰 폭으로 늘었다. 2015년 3조1253억원에서 2016년 4조732억원으로 30.3%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58조1923억원에서 53조835억원으로 8.7% 감소해 대조를 이뤘다. 포스코는 지난해 현금확보 및 차입금 축소 등 자산 구조조정으로 재무개선 효과를 봤다. 영업이익은 18% 증가하고 순이익은 흑자 전환했다. 반면, 매입채무는 늘어 협력사들의 부담을 외면한 채 자체 재무개선에만 집중했다는 비판을 낳는다. 권오준 회장의 연임을 위해 협력사들이 희생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대기업의 매입채무는 협상력 우위를 악용한 거래 관행으로 지목된다. 대기업은 매입채무를 늘려 재무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외상으로 부품을 납품해야 하는 협력사들은 유동성 위기에 시달릴 수 있다. 산업 생태계에도 부정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설과 추석 등 명절 때마다 협력사 결제대금을 조기 지급한다며 생색냈지만 실상은 외상거래를 늘려온 듯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