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국민들의 지지 속에 새로운 정부의 수반이 뽑혔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청와대 및 정부의 구조적·인적 쇄신이 속도를 내고 있다. 곧이어 보다 구체적인 행정조직 개편안과 국정과제의 제시를 기대한다. 그 조직과 과제가 어떠한 것이든 간에 새로운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 필요하고 충족되어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정영철 법무법인 시공 변호사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
국가의 공권력과 개인적 자유의 조화
우리나라의 소위 진보세력은 대부분 과거 1970~80년대 국가권력에 저항하면서 정치적 경험을 쌓아온 이들로서 국가권력에 의한 개인의 인권유린가능성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국가의 공권력을 장악해 국가라는 기구를 통해 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경우 개인적 자유가 헌법적이고 기본적인 가치라는 것을 전제로 정책을 짤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가 부귀와 명예를 얻은 후에 빈곤한 자를 멸시하였듯 이들이 권력을 얻은 후에 권력이 없는 자들을 무시하는 정책을 펴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무자비한 권력에 저항한 자들이 권력을 얻은 후에는 더 무자비한 권력을 휘두르는 역사적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행정부가 공권력을 통해 사회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좋지만 권력의 행사를 위해 지켜야 할 절차, 최대한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 정치적 노력, 그리고 개인의 기본적 권리에 대한 존중을 언제나 머리에 두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을 비방한다고 형사입건을 하는 수사기관의 행태, 대통령 정책에 부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언론플레이를 통해 기업을 압박하는 행태, 국가정보원 개혁을 부르짖으며 전 국정원 간부를 원장으로 임용하는 행태, 과거 정권의 정당한 정책집행이나 수사결과를 아무런 근거 없이 다시 뒤집어본다며 들쑤셔 놓는 참모들, 인사원칙을 아무런 설명 없이 특정인을 위해 번복하는 태도 등이 과거 정권과 다르지 않는 행태로 보인다. 공권력을 잡은 자들은 부단히 자성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실력주의의 조화
민주주의는 모두를 평등하게 취급, 부당한 차별을 하지 아니하며 평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지 모두에게 평등한 결과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치인들이나 행정관료들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평등한 결과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평등한 기회를 부여받았고 열심히 노력해 일정한 지위에 오른 자를 결과만을 이유로 깎아내려서는 안 되며, 반대로 평등한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 결과적 평등을 보장해서도 안 된다.
이는 사회구성원의 다양성을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포용해 보다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의사결정과정에의 참여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과는 다른 명제다. 예를 들어 남녀성별비와 기업임직원비율의 비교에 따른 강제된 기업지배구조상 다양성은 적어도 제도도입 초기에는 바람직할 것이며, 성적 편향의 차이에 기초한 차별적 대우에 대한 적극적 논의는 바람직하다.
다만 과거 특정지역출신임을 이유로 개인 실력과 관계없이 조직전체에 해를 가하면서 인사상의 특혜가 주어진 경우가 많았다는 이유로 소외지역 출신 인사에게 그 능력과 관계없이 인사상의 특혜를 부여한다면, 이는 악을 악으로서 대처하는 졸속 방법으로 실력주의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해치는 것이다.
탕평책이란 능력에 따라 골고루 인재를 발탁한다는 것이지 특정지역에 대한 우선순위를 되돌리자는 것은 아니다. 행정조직은 비교적 인사시스템이 확립돼 있어 이러한 편중된 인사정책의 악영향이 적다고 해도 공기업과 같은 공공기관은 조직전체의 능률이 계급적 질서에 따라 좌우되므로 잘못된 인사는 공기업의 기능적 효율성을 저하시켜 종국적으로 국민 부담만 가중시킬 수 있다.
또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모의 배경이 공무원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고려되는 것, 반대로 자식들의 자발적 결정에 따른 국적선택이나 병역문제를 근거로 공인의 능력에 시비를 거는 것 모두 전근대적 연좌제를 강요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우민주의를 구별해 인사에 있어서 보다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능력에 따른 인사원칙을 제시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시스템적 개선, 구조적 개선을 이루려면 당장 귀찮고 정치적 배당에 소외되는 자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일관된 제도와 규정에 따른 인사정책을 위한 진지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공권력에 의한 규제의 조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노동 자원보다 자본 자원에 생산성 대비 보다 많은 비율로 부의 분배가 이루어지면서 국민경제 전체를 양극화하고 국민경제의 활기를 떨어뜨린다는 주장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대체로 인정하고 있는 명제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지나치게 많은 공기업 등 공공기관의 지나친 확대정책과 보다 복잡한 규율체계 확립은 도리어 공공기관의 비능률성을 조장하고 기업의 자율적 경영능력을 떨어뜨려 한국경제에 대한 대외적 신인도를 저하시켜 우리 사회 전체 성과를 더더욱 떨어뜨리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폐해시정이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해 대규모기업집단을 어떻게 왜 규율해야 할지에 대한 보다 심각한 고민을 한 후에 정책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그냥 ‘4대그룹의 준법 여부를 보다 엄격하게 보겠다’는 식의 시각으로는 대규모기업집단 문제 해결은커녕 변죽도 울릴 수 없다. 대규모기업집단의 주주 및 경영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시켜 국민경제측면에서 필요한 규제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이는 자본의 적정성, 시스템위험 해소, 계열사 간 이해상충, 이사회의 독립성, 소수주주의 적극적 참여유도를 통한 기업가치의 상승 등이다.
일자리 만들기의 수단이 공무원 신규채용과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것은 실망스럽다. 물론 중소기업벤처부를 만들고 벤처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이 병행되지만 공공기관에 의존한 일자리 정책은 그 효과의 지속성이나 파급효과의 폭이라는 면에서 국민경제 전체의 효율적 운용, 소득격차의 해소방안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며 도리어 장기적으로는 국민경제 성장에 악영향이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보다는 분야에 차이는 있겠지만 공권력에 의한 규제를 보다 투명하고 필수불가결한 것에 국한되도록 함으로써 규제가 기업의 활동장려책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공공기관의 대폭적 민간이양으로 민간경제의 자발적 활력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보다 지속적이며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기업의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인센티브는 한국의 전반적 산업구조개편,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한 규율, 노동의 유연성, 노조운동의 비정상적 일탈, 노동의 생산성 향상 등과도 연결되는 문제일 것이다.
복지사회의 확대와 균형재정의 조화
보건의료의 보장성 확대, 공공성 회복, 의료양극화 해소나 아동양육과 노인복지를 위한 급여지급의 확대가 모두 지극히 필요한 정책목표라는 것에는 모두가 의견을 같이 할 것이다. 그러나 인기영합주의에 따른 행정부의 계획과 정치인들 간의 단견이 결합되면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재정적 파탄을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보다 점진적이고 보다 보수적인 접근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한시적으로 국민건강보험이 흑자라고 해 비급여를 모두 급여로 흡수하고, 국민의료비 부담률을 대폭 줄이기 위해 본인부담금을 없애며, 15세 이하나 치매 치료비의 전적인 국가부담체계로 옮긴다면 대폭적인 건강보험료와 보험수가산정체계의 개편이 없는 한 바로 국가보조금의 대폭적 확대추세로 돌아설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사태의 가능성은 누리수당과 노인수당 때문에 이미 우리가 경험한 혼란상태가 웅변하고 있다.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해 지방에 추가로 국립의료원을 설립하고 일차적 진료기관, 예방적 진료기관으로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한 계획이지만 현실적으로 유능한 인력이 확보되지 않고 환자가 만족하지 못한다면 만성적자로 또다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의료전달체계의 개편 역시 환자를 설득시킬 수 있는 방안의 고려도 필요할 것이다. 즉 국민을 위한 제도개편에 국민이 만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보건의료산업이 국민경제의 성장동력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목표는 이미 수십년전부터 여러 정권에서 제시돼 역대 정권들이 여러 가지로 노력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현 행정부가 또 다시 보장성 확대와 더불어 강조하고 있다. 효과적인 정책목표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국민건강계정상 자원 배정순위 조정 내지 규모의 재조정이 필요할 것이기에 개별 기업이나 산업에 대한 지원책으로서가 아니라 국민의료비의 재원조달계획과 연계돼야 할 것이다. 정책목표로 제시하기는 쉬어도 이를 성과로서 자랑하기는 어렵다.
지방균형 발전과 국가전체 재정건전성의 조화
새 정부가 노무현 정부 2기라면 이들의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은 노무현 정부의 지방분권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국민들이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면서 정체성을 찾고 각자의 지방자치단체를 보다 다양하게, 그리고 활기차게 발전시켜 온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정치가 모든 면을 압도해 임기 후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상태 나아가 국가의 재정상태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정 개발공사나 공기업을 통한 사업을 벌여놓아 파산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
이에 대한 우려는 지난 행정부 초기부터 지적됐으며 일부 중앙정부의 통제장치가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새 행정부는 자신의 업적을 과장, 통제장치를 풀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지역개발사업을 무작정 장려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지역개발을 위한 자금조달이 어려운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정치력을 동원해, 중앙정부의 보증에 기초한 채권을 발행하고 사후적 문제 해결은 중앙정부에게 떠맡기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정치는 정치가 통제할 수밖에 없다. 새 행정부는 당장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주민들이 요구한다고 해서 지방자치단체의 온갖 행사 주최와 개발 사업을 위한 재원조달요구 내지 지원을 들어 주어서는 안 된다. 또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각종 공기업과 개발공사의 재정건정성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정하고 일체의 예외를 인정하지 말고 속도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결정은 결국 대한민국의 경제적 부담을 세대간, 개인 간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에 달려 있다. 현 세대의 행복을 위해 다음 세대에게 무제한의 부담을 안겨주는 것, 한 지역의 행복을 위해 국민전체에게 부담을 이전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행동이며 자신의 비참함을 자초하는 길이기도 하다.
신중하게, 신중하게 또 신중하게
누구나 순수이성에 따른 가장 도덕적 결정을 내렸다가 실천적인 이성의 붕괴와 개인, 나아가 집단의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 원인은 이성적 목표의 우선순위설정에 있어서의 오류일 수도 있고 현실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는 정책수단을 공권력을 통해 강제하는 고집일 수도 있다.
새 행정부는 지금 여기서 당장 달콤한 정책목표와 수단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헌법적 가치질서 하에서 조금 더 장기적 시각을 가지고 보다 실천적이고 지속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목표와 수단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였으면 한다.
탄핵절차로 땅에 떨어진 국민의 사기와 희망을 하루 빨리 진작시키는 것이,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것이 화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실체나 수단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당장 듣기 좋은 목표만을 제시하지 말고 목표의 여러 가지 측면을 고민 또 고민해야만 현 행정부가 실현가능한 그리고 장기적인 효과를 가지는 정책을 통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구조개혁 내지 시스템의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더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새 행정부가 내년 지방선거 이전까지 개헌안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한 마당에 일방적으로 지나치게 빨리 나가는 것은 그러한 목표에 반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지난 5월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광화문1번가' 개소식에 참여한 시민들이 메모를 통해 정책제안을 하고 있다. '광화문1번가'는 국민의 정책 제안을 받는 국민인수위원회 오프라인 창구 역할을 하게 된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