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미래연구원) “급변하는 농업환경, 농업인 자율성·책임성 강화정책 시급”

평균 농가소득, 도시의 63.5%…"소농 지속가능성 높이고, 전업농 경쟁력 강화 추진해야"

입력 : 2017-06-21 오전 6:00:00
농업을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환경변화에 대응한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이 모색돼야 한다.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외국산 농산물의 홍수가 국내 시장에 밀어닥치는 상황에서 농촌인구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한편, 농업의 기계화와 자동화로 정밀 농업이 발전돼 가는 양상이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대응하고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갖춰 갈 것인가. 김동환 농식품신유통연구원장(안양대학교 국제통상유통학과 교수)의 진단을 들어 본다.<편집자>
 
문재인 정부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강조하는 등 과거 경쟁력 위주에서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농정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 아직 신정부의 농정 방향이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지난 농정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야 할 농정추진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990년대 중반 우르과이라운드(UR) 이후 정부는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농업경쟁력을 강화하려 했지만 식량자급율은 지속적으로 저하되고, 농가 소득도 정체 되는 등 농정 효과성이 미흡한 문제점을 보여 왔다.
 
2016년 말 현재 평균 농가소득은 3719만7000원으로 도시근로자 가구 평균소득 63.5%에 지나지 않고, 식량자급율 및 곡물자급율도 각각 50.2% 및 23.8%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책 추진 방법에 있어서는 지나친 정부 주도형 설계 농정으로 농업인의 자율적 발전을 저해해 왔다고 비판되고 있다.
 
과거 개발경제 패러다임 하에 정부는 농업의 세부 분야까지 참여해 발전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농업인 스스로 발전을 도모할 유인을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보조금 등 지원책 위주의 농정으로 농업인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시장 왜곡 현상을 반복했다. 2000년대 들어 도입된 직불금 지원 정책은 쌀 농가 소득보전 위주로 설계돼 품목 간 형평성이 미흡하고 쌀의 과잉 생산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아울러 중앙 정부 위주의 정책으로 지역적 특색을 가미한 지역농업 발전 정책이 미흡하고, 정부가 농산물 수급을 지나치게 주도해 자율적 수급조절 역량의 미흡이라는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농정추진 기관의 난립 및 기관 간 업무 조정 미흡으로 농정의 효율성도 저하되고 있다.
 
최근 농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환경변화에 대응한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이 모색돼야 한다. 우리 농업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확대에 따른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외국산 농산물과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농촌 인구의 초고령화로 농가 노동력 부족 현상 심화와 고령농업인에 대한 복지 수요 증가가 동시 발생하고 있다. 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3D 프린터 등 4차 산업혁명의 대두로 농업의 첨단화가 진전되고 기계화, 자동화로 정밀 농업이 발전될 전망이다.
 
경제 저성장 기조로 국가예산 증가율이 저하된 상태에서 복지 재원 소요가 증가돼 농업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지구 온난화 및 환경 문제 대두로 기후 변화 대응 태세 확립과 지속가능한 친환경 농업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는 국제 곡물시장도 기후변화에 따른 공급교란과 동북아 정세 변화에 따라 불안정성이 커질 수도 있다. 현재 막혀 있는 남북한 경제 교류가 중장기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한반도 전체의 식량 수급이 이슈로 대두될 것으로 전망된다. 마지막으로 식품안전성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시장개방의 결과 소비자들의 수입농산물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농업 환경에서 새 정부의 농정 패러다임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농의 지속가능성 제고와 전업농의 경쟁력 강화 정책을 구분하면서 동시 추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농정은 소농 보호와 전업농 발전정책이 혼재돼 정책프로그램이 혼란스러웠고 그 결과 정책 효과성이 반감되는 문제점을 보여 왔다. 앞으로 농정은 소농 보호, 환경보호 등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강화하는 정책과 전업농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미래 농업 대응 대책을 구분해 추진해야 한다.
 
영세 소농에 대해서는 소득보전 및 복지지원 대책을 강화하고 직불금 제도를 친환경적 농업을 촉진하는 방향에서 설계함해 지속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전업농에 대해서는 기술개발 및 교육, 지도 사업을 강화해 경쟁력을 높이고 재해보험 및 수입보험 제도 등의 확충을 통해 경영안정성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책 패러다임 하에 신정부가 시급히 추진해야 할 농정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 쌀 위주로 되어 있는 직불금(direct payment) 제도를 품목중립적인 제도로 변경해 전체 농가의 경영안정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현재 농업예산에서 직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4% 정도로 농가소득 지지에 한계가 있으며 선진국에 비해 낮은 실정이다. 쌀소득보전직불, FTA 피해보전직불, 밭농업직불 등을 통합해 농지보전 및 식량안보 유지에 대한 보상성격의 직불제도(기본 직불제)로 전환하고 직불금 단가 인상도 필요하다.
 
기본 직불제는 기본소득의 개념을 원용해 농가 규모에 관계없이 일정액을 균등하게 지급하여 영세소농의 지속가능성과 소득 증대에 기여하도록 하고, 취미농과 대규모 상업농을 배제하기 위해 직불금 지급 대상 농가규모의 상하한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본직불제 이외에 환경보전, 경관 및 농촌사회 유지, 생물다양성 유지를 위한 공익형 직불제도의 확대가 필요하다. 지금의 환경보전, 경관보전 직불제 등을 확대 개편하고 준수의무(cross compliance)의 강화도 필요하다.
 
둘째, 만성적인 쌀 공급과잉 현상을 해결하고 식량자급율을 향상시키기 위해 쌀을 타 곡물 및 사료작물로 전환하는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 이상기후 등으로 국제시장에서 곡물 생산의 불안 요인이 상존하는 가운데 농산물의 국제적인 수요는 향후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국내 식량 자급률유지 및 향상을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
 
쌀 과잉 생산을 해소하고 낮은 곡물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쌀을 밀, 대두, 사료작물 등 타 작물로 전환하는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쌀 생산조정제)의 도입이 필요하다. 아울러 사료용 쌀 재배 확대를 위한 다수확 쌀 품종 개발 및 보급, 밀·대두와 같은 곡물의 품종 개량, 새로운 영농 기술 개발 등으로 생산성 제고도 수반돼야 한다.
 
셋째, 민간 자율적 품목 발전 및 수급조절을 도모하기 위해 품목별 전국조직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현재는 정부가 품목별 발전대책 및 수급조절을 주도함해 생산자의 자율적 발전 및 수급조절을 저해하고 있다. 정부 주도적 품목 발전 대책 및 수급조절은 시장 왜곡 문제를 발생시키고 정책의 효과성도 저하시키고 있다.
 
농협의 품목별 협의회, 각종 협회, 품목연합회, 자조금 추진 위원회 등이 전국조직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으나 개별적으로 활동해 통합 및 조정 기능의 취약성을 보이고 있다. 현재 난립하는 각종 전국 조직을 품목별로 통합, 단일 조직화하여 자율적 품목 발전대책과 수급조절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전국조직의 기초조직으로서 농협, 농업법인 등은 조합원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고, 이들의 연합체로서 전국조직이 실행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는 품목별 전국위원회가 주도권을 갖고 품목별 발전대책 및 수급조절 대책 수립하고 정부는 관련 제도 개선 및 자금 지원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품목별 전국 위원회의 기능은 품목별 발전 대책 수립(국내 소비 대응, 수출확대, 경쟁력 강화, 생산비 절감 등), 품목별 수급대책, 지역간 경합 조정, 자조금 사업 관리 및 소비촉진 사업 추진, 표준화 및 식품안전관리 업무 등이며, 품목별 전국위원회의 결정 사항은 법률적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법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
 
넷째, 중앙정부의 설계식 농정에서 지역 자율성을 높이는 지역 농정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는 중앙정부가 사업을 설계하고 지방이 공모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자율적 농정이 미흡한 문제점을 보여 왔다.
 
앞으로는 지역 스스로 지역농업의 발전대책을 기획, 실행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하지만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일괄적인 농정 이양은 지역간 과당 경쟁을 초래하는 등 부작용이 예상된다. 지역 농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농정담당자들의 농정 기획 및 수행 능력 배양이 필요하고, 행정기관만이 아니라 농업인이 참여해 농정을 추진하는 협치(governance)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다섯째, 난립하고 있는 농정관련 기관의 정비와 네트워크형 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 농정은 중앙 및 지방 행정기관은 물론 각종 산하기관, 생산자단체 등을 통해 산발적, 중복적으로 추진돼 투입대비 효과성이 미흡하다. 특히 R&D, 교육, 생산·유통 지원사업 등에서 중복성이 커 기관간 업무 조정 및 중복 방지대책이 시급하다. 지역에서는 각 행정기관과 지원기관이 통합 연계된 네트워크형 지원 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여섯째, 청년농업인 등 후계인력을 양성해 농업의 지속적 발전을 유도하고, 농업금융제도를 개편함으로써 4차산업혁명 시대에 아이디어가 풍부한 청년 및 농업인들이 새로운 농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귀농 희망자 및 후계인력에게 농업지식, 기술 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농업자격증 제도를 도입해 자격증 취득자에 농지구입 자금 등 투자비 및 일정 기간 생활비를 지원하는 제도의 도입의 필요하다.(EU의 청년농업인 직불제도 참조)
 
신규농에 대해서는 단순한 자금 지원 위주에서 철저한 교육 및 컨설팅 지원으로 영농 성공률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마인드를 가진 젊은 인재들이 농업에 유입되도록 벤처 농업 등을 육성해야 한다.
 
농업법인의 창업을 위한 교육, 컨설팅 기능 강화 및 전문 CEO 양성이 필요하며, 물적 담보가 없어도 농업경영체가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농업금융방식 개편이 필요하다. 현행 담보 위주의 자금 대출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모펀드(PEF) 등 사업 평가 방식에 의한 벤처캐피털 형식의 자금 공급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아울러 농업부문에 민간 투자를 유치하도록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특히 인구 과소지역 및 낙후지역 중심으로 대기업을 포함한 일반 기업이 농어업 및 농어촌 개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다.
 
이상으로 신정부가 추진해야 할 주요 농정추진과제를 제시해 보았다. 신 정부에서는 과거와 같이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농정이 아니라, 농업인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농정체계를 개편해 농업 발전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기 바란다.
 
6월16일 오전 전남 무안군 청계면 유당농원 일대 마른 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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