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물론 학계나 경제계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화두가 ‘4차 산업혁명’이다. 그럴듯하고 매력적인 말이지만 구체적인 실체를 말하라면 쉽지가 않다. 우리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꼭 성취해야할 과제이지만 ‘무엇을, 어떻게’라는 대목에서는 수많은 대답이 나온다. 과연 그 실체는 무엇이고 새 정부의 4차 산업혁명을 이뤄내기 위한 정책은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진단을 들어본다. 김진형 지능정보기술원 원장(KAIST 명예교수)의 ‘4차 산업혁명, 용어의 유행과 본질’, 그리고 이젬마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의 ‘위기를 기회로…J노믹스의 4차 산업혁명 정책’을 함께 소개한다.<편집자>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가 변화를 갈망하는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상황과 맞물려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대부분의 세미나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제목에 들어가고, 모든 회의가 4차 산업혁명을 서두로 논의를 시작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만든 클라우스 슈밥의 책이 가장 많이 팔린 곳이 한국이라고 한다. 정부 내에서도 여러 부처가 화두 선점을 위해 경쟁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대부분의 후보자들이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중요한 공약으로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설립한다고 약속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의 정책 중에 가장 기대되는 것이 4차 산업위 설립이라고 기업들이 대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이 용어가 학계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인정되고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일까. 관심있는 용어를 등록하면 그 용어가 언론에 나타날 때마다 알려 주는 구글 서비스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영어로 등록하고 연락을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다. 몇 일전 연락이 왔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열어보니 국내에서 발간되는 영자지의 기사였다. 4차 산업혁명이란 우리 언론에는 많이 등장하는 용어지만 선진국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또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정의도 전문가 별로 일관되지 않는다. 특히 이 혁명을 이끄는 기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백가쟁명이다. 전문가들이 자기 전공이 소외될까 우려하여 아전인수 격으로 ‘이거다 저거다’ 주장한다. 혹자는 독일의 스마트공장 국가 프로젝트인 ‘Industrie 4.0’과 혼동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4차 산업의 출현으로 이해하여 4차 산업이 무엇이냐고 묻는 분도 있다. 6년 전 3차 산업혁명이 시작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벌써 4차 산업혁명이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클라우스 슈밥도 저서에서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와 정의에 대하여 전문가들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그 본질보다는 용어에 집착한다. 개방·공유·참여의 정부 2.0 시행을 정책으로 제안했더니 뜬금없이 정부 3.0이란 구호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 우리 정치권이다. 혼란스러운 용어에 흔들리지 말고 그 본질을 이해해 잘 대응해야 할 것이다.
산업혁명이란 새로운 기술의 출현으로 새로운 산업들이 창출되고 그에 따라 경제와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산업혁명을 이해하려면 그 변화를 이끌어 가는 기술을 이해해야 한다. 18세기말에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19세기 중반 이후의 2차 산업혁명은 제강기술과 전기의 출현이 혁신을 이끌었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전자, 통신,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달에 따른 디지털 혁명을 3차 산업혁명의 시작이라는 것에는 대부분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다만 제러미 리프킨은 통신기술과 신재생에너지 기술로 3차 산업혁명이 열린다고 2011년 주장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크라우스 슈밥은 21세기의 시작과 동시에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4차 산업혁명이 디지털 혁명을 기반으로 한다며, 모바일 인터넷, 센서,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을 핵심요소 기술로 지적했다. 과연 모바일 인터넷, 센서,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이 21세기에 새로 시작된 기술일까.
기술은 혁신을 낳고, 그 혁신이 또 혁신적 기술을 낳는다. 따라서 기술의 파급은 기하급수적 성격을 갖는다. 처음에는 미미한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 급상승하는 것이 기하급수의 성격이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 보면 앞의 변화는 미미하고, 뒤의 변화는 급격해 보이지만 그 성격은 동일하다.
요즘 나타나는 놀라운 인터넷과 인공지능의 성과는 70년 전 시작된 디지털 기술, 즉 컴퓨터, 반도체, 통신, 소프트웨어 기술의 기하급수적 파급 효과일 뿐이다. Cyber-Physical 시스템, 3D 프린터, 드론, 로봇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 기술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기존 디지털 기술의 확산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요즘의 경제·사회의 변화는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작이라기보다 3차 산업혁명, 즉 디지털 혁명의 심화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러 외국 연구기관들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보다는 디지털 변환(Digital Transformation), 줄여서 DX라는 용어를 즐겨 쓴다. DX 경제가 도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요즘의 변화를 어떤 용어로 서술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를 이끄는 기술이 무엇이고, 그 변화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요즘의 대부분의 혁신은 디지털 기술에 의한다. 그 중에서도 하드웨어보다는 인터넷, 소프트웨어, 인공지능이 변화를 선도한다. 개방·공유·참여를 통하여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는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그 응용이 요즘 일어나는 혁명적 변화의 본질이다.
차제에 국내 전문가들이 즐겨 쓰는 ‘융합’이란 용어에 대하여 한마디 하고 싶다. 여러 분야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융합하여 새로운 기술, 새로운 제품,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 혁신의 한 방법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잘 알려진 기술의 적용(application)을 ‘융합’이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반도체, 소프트웨어, 인공지능은 도구 기술로서 그들의 가치는 창의적 사용에서 나온다. ‘BT와 IT의 융합’이나 ‘금융과 IT의 융합’, 어색하지 않은가. 생명과학의 문제나 금융의 문제에 IT기술을 적용한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2013년 9월 미국 Time지는 “구글이 죽음을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도전적인 질문으로 커버를 장식했다. 제약회사도 아니고, 의료기기를 만드는 회사도 아닌데 왜 구글에게 이러한 질문을 했을까. 이는 이제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 능력이 있으면 못 할 것이 없고, 또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 능력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20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선언했던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 만들기” 그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월22일 오전 경기 의왕 현대위아 의왕연구소에서 열린 제1차 4차 산업혁명 전략위원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